[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절대적으로 살기? 며칠 전 산행 중 친구와 대화하다가 생각난 말이다. 의아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단지 '상대적으로 살기'의 반대말일 뿐이다. 연초 가장 먼저 읽은 책이,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여성 장애인 변호사 하벤 길마의 자서전 'Haben'이었다. 번역판이 있음에도 원서로 읽은 것은, 힘들었을 그의 삶을 생각하며 나도 다소의 고통을 체험하고 싶어서다.

그는 에리트레아 난민 가정의 자녀로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시력이 약하고 귀가 어두웠다. 결국, 성장하면서 시력과 청력을 잃었다. 그렇지만 그 장애에 굴하지 않고 사하라 사막 봉사, 알래스카 체험 등을 통해 자신을 살렸다. 동시에 미국 내 장애인 보호시설과 사람들의 도움으로 역경을 극복해 나갔다. 대학 시절부터 학교 식당의 메뉴판 확보 등 장애인 권익확보를 위해 투쟁하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나갔다. 하버드 로스쿨 최초의 시청각 중복장애인 졸업자가 되었다. 인권변호사로서 공익단체에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살게 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나야말로 얼마나 행복한가 다시 깨닫는다. 작년 초에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맹농아삼중고(盲聾啞三重苦)의 헬렌 켈러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읽고 감동했다. 하벤 길마나 헬렌 켈러처럼 이중, 삼중의 중복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어떻게 극복하고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살았는지를 생각하니, 저절로 감동된다. 그렇지만 솔직히 그들이 싸워 이겨내야 했을 불편함의 깊이나 너비를 알지 못해 미안하다. 상상이 잘 안 된다. 나라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이렇게 비장애인으로서 보고 듣고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도 감사를 잊고 사는 삶이 부끄럽다.

비장애인끼리 부딪치고 아웅다웅 다투며 산다. 비교하며 산다. 잘난 척하고, 무시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한다. 때로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 하고, 거꾸로 타인보다 부족한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나 좌절하기도 한다. 시기·질투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타인에게 상처입히고, 상처 입는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누리려 한다. 쓸 줄도, 베풀 줄도 모르면서 재산을 모으려 한다. '남과 함께'가 아닌 '나 혼자만, 내 가족만, 내 회사만'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물론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가족에 대한 책임감 등을 이유로 들 수는 있지만, 타인보다 더 우월해지고 싶은 욕심에서 발로한 경쟁 때문에 사회가 비뚤어진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할까.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살면 안 될까. 그래서 생각하게 된 말이 '절대적으로 살기'다. 비교하지 말자는 거다. 모든 왜곡과 오류는 자신을 타인과 비교함으로써, 즉 '상대적으로' 살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그 반대의 삶을 살아보자는 말이다. 지금 내가 부여받아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그 안에서 나와 다른 이들 모두에게 유익한 일을 하며 살자는 거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다른 탤런트(talent), 즉 재능을 주셨다. 그것으로 서로 섬기며 살라고 하신다. 그 탤런트에 감사하며, 이를 사용해 나와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 살아야 한다. 거기에 서로 비교하고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지 말자. 거꾸로 자신을 너무 타박하거나 포기하지도 말자. '지족가락(知足可樂-만족함을 알면 가히 즐거울 것) 무탐칙우(務貪則憂-탐하는 일에 힘쓰면 근심이 있을 것)'라 한 경행록(景行錄)의 말처럼,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면 좋겠다. 성경 빌립보서 4장12절에서 바울 사도도,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라고 우리를 교훈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