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충북과학고 수석교사 김창식

초등학교 수석선생님이 출판한 책을 보내왔다. 충북교육도서관의 도서 출판지원사업으로 출간됐고, 남편과 미국에 있는 동안 캘리포니아 남단 샌디에이고에서 보고 경험한 것을 생생히 기록한 교육에세이였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듣고 본 것, 체험한 것, 느낀 것을 산문 형식으로 사백 페이지에 달했다. 대략 펼쳐보았는데, 수석선생님의 정확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이 고스란히 담겼다.

본문 중에 '누구에게 있었을 꿈. 꿈을 꿀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에서 '누구에게 있었을 꿈'이 반복해서 읽혔다. '어른이 돼도 가슴 속에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야…'부분을 읽고 내가 꾸었던 꿈을 생각했다.

무슨 사유에서인지 사진첩을 꺼냈다. 첫 장에 있어야 할 결혼식 사진은 이십오 년 전쯤, 서른 중반에 소실됐다. 소실이란 용어는 맞지 않았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운 아내가 갈기갈기 찢었다. 딸과 아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되돌아보기 싫은 시기를 기억에서 지웠다. 파렴치하게도 내 인생의 기억 테이프에서 잘라냈다. 사실 나는 우유부단함에 떠밀려 이 순간까지 살아왔다.

아내가 결혼사진을 찢은 것은 내가 우유부단함에서 명쾌하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안되는 것은 거절할 줄 알고, 베푸는 인정의 한계를 명확히 했더라면 인생의 기억 테이프를 잘라내는 파렴치한 놈은 되지 않았을 터였다. 꿈을 망각하고 살았던 시절이 돌이킬 수 없는 자책의 뿌리가 됐다. 지금 내게 '꿈 하나쯤'은 무엇일까.

충북과학고 수석교사 김창식
충북과학고 수석교사 김창식

도드라지는 꿈이 생각나지 않는다.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아내가 아프지 않고, 결혼해서 분가한 딸과 아들이 직장에 꿋꿋하게 붙어 있고, 내가 출판한 책이 잘 팔리고, 가족에게 골고루 나누어 줄 수 있게 복권의 당첨 등이 순서 없이 생각났다. 정년을 앞둔 친구와 나누었던 말, 감당하지 못할 꿈은 꾸지 말자. 꿈이 크면 물욕이거나 명예욕이겠지? 머리가 몰랑몰랑한 나이가 아니잖아? 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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