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여느해와 다름없이 사람들은 자기마다 가녀린 소망을 가지고 설레임과 가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속에 하루하루의 삶의 여정을 향해 줄달음 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전세계적으로 창궐한 코로나 19가 하루속히 우리나라에서 종식되어 움추렸던 경제가 살아나고 멀었던 인간관계가 만남을 통하여 나눔과 섬김으로 잃었던 웃음을 되찾아삶의 질이 향상되길 소원한다. 머지않아 그런날이 올것이라고 믿는다. 지금도 고등학교때 국어교과서에서 조윤제님의 은근과 끈기라는 수필을 배운 기억이 새록새록 뇌리를 스치곤 한다. 작품을 보면 한국 문학과 한국 사람 생활의 특질이란 어떤 것인가? 오랜 역사의 전통에서 살아 온 한국 사람의 생활에 특질이 없을 리 없고, 또 그를 표현한 한국 문학에 특질이 없을 수 없다. (중략) '은근'은 한국의 미요, '끈기'는 한국의 힘이다. 은근하고 끈기 있게 사는 데 한국의 생활이 건설되어 가고, 또 거기서 참다운 한국의 예술, 문학이 생생하게 자라나갈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우리민족이기에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함께 하면 우리의 바램은 이루어 질 것이다.

참으로 코로나 19는 우리의 생활패턴을 많이 변화시켰다. 그중 하나가 일선학교의 대면 수업과 비대면의 조화로운 교육과정운영이다. 언제가 메스컴을 통해 아이들이 등교하여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좋아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그러면서 학교등교하는 날이 너무너무 즐겁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전에는 학교등교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수업으로 학업을 진행하다보니 지난날의 학교등교가 얼마나 감사한지 이제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우리집안에도 초등학교 1학년 손자녀석이 있다. 어느날 아침에 안식구의 휴대폰이 울렸다. 속으로 무슨 전화가 아침 일찍 오나? 무슨 급한 일이 있나? 하며 그리 반갑지 않는 마음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전화가 아침 일찍오거나 밤늦게 오면 그리 반가운 소식은 없기 때문이다. 휴대폰 벨이 두 번 울린다. 주방에 있던 인식구가 휴대폰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하니 상대방에서 할미, 나 지원이야, 할미보고 싶지만 코로나 때문에 못가, 할미, 힘들면 나한테 꼭 전화해, 알았지? 라고 한다. 이어 안식구는 그래, 알았어, 아빠, 엄마는 출근했어요? 라고 물으니 응, 아빠, 엄마는 출근했어 , 나는 집에서 공부하고 있어 라고 대답을 한다. 이렇게 할미와 손자가 아침부터 전화로 수다(?)를 떤다. 얼마후 전화를 끊고는 안식구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여보, 글쎄, 지원이가 할미 힘들면 자기한테 꼭 전화하래요 하며 은근히 좋아한다. 그런데 내 마음은 어딘지 모르게 시려온다. 실은 그녀석이 할미한테 그런 말을 할것이 아니라 할미가 어린손자한테 그 말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어린 것이 점심은 제대로 차려서 먹는지? 물론 지 엄마가 알아서 준비하고 출근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내일의 더 행복한 삶을 위하여 함께 이겨내야 할 우리의 몫이다.

조금후에 나는 안식구한테 살며시 물어 보았다. 아까, 손자한테 전화받고서 무척 좋아하던데 왜 그리좋았어? 아니 손자한테 전화오면 좋지, 그러면 안좋아요? 하며 오히려 나에게 되묻는다. 아니, 그거야 좋지, 그거말구? 어, 글쎄 그녀석이 내가 힘들면 지한테 꼭 전화하라고 두세번 말하잖아요, 어린 것이 할미 생각하구 말이야, 참, 그 녀석 하고 말을 감추어 버린다. 속으로 응, 당신을 챙겨주었다는 거지?, 다시말해 배려해 주어서 좋았다는 거지? 하며 여보, 알았어, 나, 사무실에 갔다 올게 하곤 현관을 나섰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렇다. 무릇 배려란 마음으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다가서고 마음으로 양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배려도 연습이 필요하다. 마음에만 두지 말고 표현해야 한다. 요즘처럼 언택트로 생활하다보면 자칫 자신도 모르게 나 중심으로 생활해 갈 수 있다. 이럴 때 상대방을 위한 따뜻한 배려의 말 한마디가 작은 사랑의 씨앗을 심어줄 수도 있다. 나도 모르게 오늘따라 힘들면 꼭 나한테 전화해 라고한 손자의 말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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