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최원영 세광고등학교장

카톨릭 순교자 중에 세바스찬(st, Sebastian) 성인이 있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근위대원으로 감옥에 갇힌 기독교인을 몰래 풀어주다 발각되어 사형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사형집행 중 여러 발의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이러한 배경 때문에 중세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추앙 받은 수호성인(Patron Saint)이었다. 14세기를 전후로 페스트를 비롯한 전염병이 창궐할 때, 중세인들은 인간의 죄에 분노한 신이 전염균이라는 화살을 인간에게 쏘았다고 믿었다. 화살을 여러 대 맞고도 살아난 세바스찬 성인의 가호가 있으면 전염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문제는 전염병에 대한 종교적 접근법으로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는 점이다. 교회에 몰려들어 신에게 용서를 구하다 전염이 더 확산되었던 것이다. 최근 종교 공간과 집단을 통해 수많은 코로나 감염자가 쏟아지는 상황과 유사하다.

코로나19라는 판데믹 상황 속에 종교가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밀집된 공간 속에서 예배를 드리는 기독교가 더 표적이 되고 있다. 심지어는 종교단체 건물에 계란을 투척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교회가 밀집된 예배를 고수하면서 방역 당국과 충돌하고 있고, 신흥 종교 집단의 경우는 그 상황이 더 심각하다. 매일 발표되는 코로나19 감염환자가 교회나 종교 집단에서 쏟아져 나올 때마다, 냉담한 정도가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기독교는 대형교회의 세습, 불투명한 재정관리, 성직자의 윤리적 타락 등 시대에 뒤떨어진 후진적 모습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코로나 19 이후 교회가 보여준 자세는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최근 개신교 진영의 가장 보수적인 교단에서 목회자를 중심으로 여론 조사를 했는데, 교회의 개혁이 절실하고 목회자의 개혁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어서 이목을 끌었다.

종교가 공동체의 문제를 외면하고 독선적인 모습을 보일 때마다 사회의 외면을 받은 것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사랑과 자비를 바탕으로 한 관용의 자세로 공동체를 포용하고 공공선을 행할 때 교회의 신뢰와 지지가 이어졌다. 종교의 목적이 인간의 해방과 공동체의 평화에 있다고 볼 때 오늘의 한국 종교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종교인들 스스로가 성찰해 보아야 한다. 종교의 영어 단어 "Religion은 다시 결합시킨다."는 어원을 갖고 있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을 사랑과 자비로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종교의 목적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폐쇄적인 집단 이기주의, 중세적 근본주의의 독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종교는 공동체로부터 외면당하고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약자와 고통을 함께 하며 공동체의 참된 가치를 실천해 나갈 때 종교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최원영 세광고 교장
최원영 세광고 교장

유대인 철학자 레비나스(E. Revinas)는 예수는 '타자(他者)를 위한 전(全)적인 존재'였다고 하면서 예수의 삶을 구현하는 것은 타자를 위해 섬기는 자세, 공동체에 헌신하는 자세여야 하고,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말한 바 있다. 모든 종교가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아가려면, 자신과 자신의 집단만을 위한 배타적인 자세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이타원만(利他圓滿), "이웃을 이롭게 할 때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의 말씀에 종교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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