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얼마 전 TV에서 집안 정리를 해 주는 것을 봤다. 정리 전후를 보여주는데 보는 나까지 개운했다. 가구 위치를 바꾸고, 물건을 버리는 등 정리를 끝낸 모습은 꼭 다른 집 같았다.

방송을 보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살지 않나 싶었다. 그래서 간혹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힘들 때도 더러 있다. 예전 사람들은 필요한 게 없어 허전했다면, 요즘은 너무 많아서 탈이다.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짐이 주인 같다'란 생각이 문득 스친다. 내 방 역시 그랬다. 늦게 까지 혼자 책 읽고 글 쓰는 나를 위해 아내는 작은 방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작은 방이지만 창문이 넓어 좋았다. 또한 창문을 열면 감나무가 눈앞에 보인다. 손을 내밀면 감나무 잎사귀나 잘 익은 감을 딸 수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예전에는 정리도 잘하던 내가 점점 정리 꽝이 되어간다는 사실이다. 작은 물건 하나라도 사용 후에 제 위치에 놓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어차피 또 쓸 건데 하며 자꾸 방 한 한쪽에 쌓아 놓았다.

그러다 옷까지 들어오고 책은 벽돌처럼 쌓여져 산성을 쌓아도 될 듯싶었다. 옷 역시 여름인데도 겨울 옷 몇 벌이나 늦가을 옷을 미리 갖다 놓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치우지 않아서 머문 상태가 맞다. 여름에 한번쯤 비가 내려 쌀쌀하면 입어야지 생각했다.

양말 넣는 곳도 있는데 방안에 바구니를 놓고 양말을 가득 채웠다. 벽 옷걸이에 옷이 주렁주렁 걸려있고 겨우 혼자 누울 공간뿐이었다. 그러니 방에 들어오면 헉, 숨이 막히거나 답답했다. 가뜩이나 코로나19 때문에 무기력하거나 우울했는데 더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처음에 방청소도 잘하고 이것저것 정리도 잘했는데... 어느 순간 창고가 되어 버렸다.

둘째 아이와 아내는 이런 나를 눈치 채고 얼마 전 정리를 해 주었다. TV 정리 프로그램처럼. 단 책은 내가 알아서 꽂게 한 쪽에 쌓아 놓았다. 다른 방에 있던 책상을 가져오고 작지만 침대도 놓아 주었다. 대신 내 방을 거의 차지했던 옷들을 책상이 있던 방으로 옮겨 놓았다.

펼쳐 있었던 책장을 2층처럼 올려 공간이 넓어졌다. 침침했던 형광등도 환한 것으로 교체했다. 책상 위에 사용하지 않던 스탠드도 갖다 놓았다. 작은 꽃병에 꽃 몇 송이도 담아 올려놓았다.

정리를 마친 날 저녁 아내는 커피도 타다 주었다. 난 음악을 들으며 책도 보고 그러다 침대에 벌러덩 누워도 보았다. 순간 몸도 가벼워지고 연둣빛 봄 같았다. 대신 아내는 첫 아이가 3~4살 때 입던 청으로 된 옷을 옷걸이에 걸어 갖고 왔다. 오래 전 힘들어서 큰아이 옷은 거의 주변에서 얻어 입혔었다.

그때 나름 돈을 모아 큰 맘 먹고 샀던 옷이었다. 다른 옷은 하나도 없지만 아내에게 이 옷만큼은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을 했던 터였다. 벽에 아무것도 없는데 아내는 그 옷을 장식 겸 걸어 보라고 했다. 이제 20년이 넘은 옷이 된 것이다. 벽에다 걸고 보니 큰아이가 입고 환하게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참 예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런 예쁜 아이에게 살면서 많이도 화를 냈다. 짠하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지금 난 정리해 새롭게 변신한 방에서 새벽마다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커피도 마시고, 글도 쓰고, 책도 보고 그러다 가끔 벽에 걸린 청옷에도 눈맞춤 한다.

여전히 바람이 차지만 어디선가 숨어 있던 봄이 빼꼼 고개를 내밀 것 같다, 이젠 방에 이어 내 마음에 나쁜 욕심이나 생각도 싹싹 뽀드득 청소를 하고 정리도 해야겠다.

그리고 희망의 초록 씨앗하나 심어야겠다. 야호!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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