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치열한 도전'책에 의하면 1996년 유포틀랜드 해상을 지나던 미 해군함대 앞에 캐나다 국적의 장애물이 포착되자 곧 교신이 시작되었다.

교신 내용 즉 통신 기록에 의하면 미 해군은 장애물로 급박한 상황이 확인되었기에 약간은 저돌적인 어조로 "북쪽 15도 방향으로 항로를 우회하기 바란다. 응답 바람", "그렇다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 차라리 당신 항로를 남쪽 15도 방향으로 우회하는 게 좋겠다. 응답 바람", "본인은 미 해군 함장이다. 되풀이 해서 말한다. 항로를 즉시 수정하라. 응답 바람", "안된다. 당신 항로를 우회하라. 제발…, 응답 바람", "여기는 USA링컨 항공모함이다. 미합중국 해군함대 중 제 1위 함대다. 우리 군함 3대가 순항중이며 호위하여 함께 가고 있으니 항로를 북쪽 15도 방향으로 수정하기를 요청한다. 확실히 경고하건대 항로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 배의 안전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응답 바람"

"여기는 등대다. 응답 바람"

"……"

'홀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호리다'의 피동형으로 '매력적으로 남의 정신을 흐리게 하여 빼앗다.유혹하다. 그럴듯 하게 속여 넘기다' 등으로 나와 있다. 무엇 때문에 미 해군은 착오를 일으켰을까? 어둠이나 안개 때문에 잠시 홀렸었던가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도깨비 얘기가 생각난다. 어떤 취객이 이슥한 밤중에 서낭당 고갯길을 혼자 넘어 오는데 웬 덩치 큰 우락부락한 사내가 자꾸 시비를 걸어와 싸움을 하게 됐더란다 사내는 인근 고을에서 힘깨나 쓴다는 장사로 서로 치고 박고 밤새도록 싸우다 지쳐 새벽 부윰히 날 샐 무렵이 되어 찬찬이 주위를 살펴보니 싸우던 사내는 오간데 없고 피묻은 빗자루 하나가 나무에 묶여 있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도깨비는 사람을 홀려 정신을 쏙 빼놓는다고….

어디 우리를 홀리는 것이 안개나 도깨비 뿐이랴. 공직자의 도박과 사회지도층 자녀들의 마약복용이 그렇고, 게임은 어떤가?

요즈음 청소년들은 1일 평균 3~4시간을 스마트폰을 보는데 소비한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멀리 벌판 끝에 사람이 하나 서 있는데 그게 정말 사람인지 허수아비 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 알아 맞히기 내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쉽게 알아 낼 방법이 있다하여 들어 보니 10분 이내 스마트폰을 하지 않고 계속 서 있다면 그건 분명 허수아비라는 것이다.

지난 소한을 전후하여 근래 드물게 추위와 함께 많은 눈이 내려 한동안 불편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 눈에 홀린 얘기를 해 볼 참이다.

같은 직종에 근무하던 지인께서 채 스무 살이 되기 전 곤고한 살림을 꾸려가가 위하여 시골로 다니며 생선장수를 했는데 어느 섣달 추운 저녁, 팔다 남은 생선을 지게 목판에 지고 충주댐이 되기 전 종댕이 지름길을 택하여 시내로 들어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주먹같은 함박눈이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이 쏟아지더라는 것이다.

나름 충주쪽을 향하여 열심히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둑해져서야 반대 방향인 제천 한수면 어느 부락으로 잘못 걸어갔다는 것이다. 점심도 못하고 탈진한 상태에서 어느 추녀 밑에 지게를 받치고 낙심하여 주저앉아 있는데 다행히 그 마을의 지인을 만나 하룻밤 신세를 지고 이튿날 아침에 다시 충주로 왔다고 한다.

눈에 단단히 홀리고 보니 전혀 방향감각을 모르겠더라는 후일담이다.

최근 홀림은 그 종류가 훨씬 더 다양하다. SNS의 거짓 정보가 국민을 홀리게 하고,신종사기와 보이스피싱 등 갈수록 그 방법이 교묘하고 대담해졌으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음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홀림현상은 가계부채가 최고조에 이르고 이에 따른 연체율이 고공행진을 하는데 사회 전반에 일고 있는 주식열풍이 심상찮다. '영끌'과 '빚투'란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너나없이 아파트 구입에 골몰하고 있으니. 어디 그뿐이랴. 정치인들은 보궐선거와 대권도전을 위한 화려한 청사진을 날마다 쏟아내고 있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 고 했던가? 홀림의 덫에 씌워지면 상황판단이 어두워 지는 게 당연지사이다.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바라기는 지식과 가치관의 혼돈으로 살가운 우리 이웃의 목소리와 선한 영향력을 외면하거나 왜곡하지 말고 정말 무엇이 우리를 홀리게하고 있는지 똑똑히 지켜 보며 정신차려 살아 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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