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몇 해 전 지역의 연구자가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에 대한 연구를 하겠다며 의견을 구할 때 격렬히 반대했던 기억이다. 경계선 지능, 경계선의 아이들이란 용어가 주는 낙인감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이유였고, 이 아이들을 구분한다 한들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부정적 의견이 강했다. 그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내 자문은 달라졌을 것이다. 용어만 볼 것이 아니라 왜 필요한가에 집중했어야 했다. 편견에 갇혀 도움 안되는 의견을 낸 것이 부끄럽다.

내게 반성을 가져다 준 책은 일본의 의사 미야구치 코지의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책을 읽고 도란도란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분들과 독서모임을 하면서 접하게 되었다. 제목만으로는 불평등에 대한 내용인 줄 알았다. 공정성에 대해 분배를 말할 때 케이크를 자르는 칼자루를 쥔 사람의 마음을 빗대어 예시를 설명하곤 한다. 서로 어느 조각을 차지할지 모를 때는 공정하게 자르지만, 자르는 만큼 가져갈 수 있다면 공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책의 케이크 자르기에 대한 해석은 조금 다르다. 작가는 일본의 소년원에서 만난 아이들을 대상으로 케이크를 똑같이 3조각으로 나누어보라는 단순한 미션을 준다. 멀쩡해 보이는 아이들이라 쉽게 해결할 줄 알았지만 많은 아이들이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아이들의 그림은 책에서 확인하시도록). 이로써 인지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기존의 교화방법으로는 돕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작가는 똑같은 크기로 케이크를 자르지 못한 아이들의 특성을 6가지로 분류하는데 인지기능과 감정 제어 능력이 약하고 융통성이 없으며 자기 평가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이 약하고 신체 운동 기능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마음을 살핀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익숙한 기존의 사회구조나 획일적인 교육체제에 적응할 수 없었던, 조금 더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을 이야기한다. 책에 제시된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이런 아이들이 많다. 2016년 3월 기준 전국 소년원에 있는 1천18명의 보호 소년 중 정신질환, 품행 장애 등으로 정신건강 치료가 필요한 보호 소년은 230명으로 전체 인원 대비 22.6%를 차지하는 데, 이 중 37%가 지적장애 및 경계선 지능에 해당한다.

인지기능에 장애가 있어 케이크를 제대로 등분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엄한 상벌 교육이 효과적일 리 없다는 것이 책의 핵심이다. 이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이들의 정서와 행동을 치료하고 돌봐야 할 책임이 가족과 사회에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공부가 아니라 사회기술훈련이나 기본적인 신체기능 향상 훈련 등이 필요하다. 신체적으로 움직임이 서툴면 기본적인 학습이 어렵기 때문이다. 학습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깨우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책의 하나 아쉬움은 저자가 활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내용이 현장에서 바로 적용가능하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으면 하는 점이다. 부록이든, 속편이든 더 소개되길 바라본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리도 2020년 아동권리보장원이 전국의 일부 지역아동센터를 중심으로 '느린학습자를 위한 지원'을 시작했다. 지적장애의 기준이 되는 IQ 70이 경계를 정한다. 전체 아이들 중 경계에 있는 아이들을 따로 모아 프로그램을 한다는 건 여전히 낙인 문제를 동반하기에 현장에서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래도 이 아이들에 대한 조기개입이 더 건강한 성장을 해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일부는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가만보니 또 용어가 마음에 걸린다. 느린 학습이 혹시 '학습'에 너무 초점이 맞춰질까 걱정이다. 이 아이들은 공부로 대표되는 학습뿐 아니라 정서와 행동을 모두 돌봐줘야 한다. 평범함의 경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나 이 구분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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