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소설가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아름다운 것들이 투자되어야겠지요."

부산 광안리 성베네딕트 수녀원에서 투병중인 이해인 수녀님의 말씀이다. 수녀원에 입회하신지 50년이 된 칠십대의 그분이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이라는 책을 내셨다. 아름다움을 위해서 아름다움을 투자한다는 그 말씀이 곧 우리나라 속담 콩 심은데 콩 난다는 뜻과 상통한다. 복을 심어야 복을 거둔다는 아주 간단한 이치를 우매하기 짝이 없는 내가 환갑을 넘기고서야 깨닫고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젊은 시절, 먹고 살기위한 뜀박질로 숨이 차서 생각조차 해볼 틈이 없었던 말,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행복하다'를 이제서 속속들이 느낀다. 경제적으로 베풀고 줄 것이 모자라니 마음을 주려고 한다. 말 한마디라도 예사로이 던지지 않고 마음을 담아 건넨다.

세계적인 갑부 록펠러가 55세 때 불치병 진단을 받은 날 이야기다. 우연히 병원 복도 벽보판에서, 주는 자의 행복에 대한 문구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자리 서서 생의 마지막 단계에 온 자신을 돌이켜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병원비 때문에 딸의 수술을 거부당하고 울며 애태우는 한 여인을 보았다. 비서진을 통해 신분을 밝히지 않고 병원비 전액을 베풀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건강을 찾은 그 어린아이가 예쁘게 잘 자라고 있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난생 처음 설렘이라는 감정을 경험했고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알게 되었다고 했다. 배품의 재미를 알게 되면서 하루하루 행복이 쌓이다보니 자신도 주치의도 모르는 사이 불치병이 사라졌단다. 그동안 행복인줄 알았던 큰돈을 벌어들일 때는 단순한 기쁨이었지 진정한 향복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가 98세에 자서전을 통해 남긴 말이 가슴에 닿는다.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고 후반기 43년은 참으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분의 후반기 삶은 복을 심고 복을 거둬들이는 삶이었다. 역시 록펠러는 사업가답게 아름다운 나눔을 투자해서 몇 갑절 키운 행복이라는 이득을 거둬들인 것이다.

이해인 수녀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시를 통해 아름다운 영혼을 주셨으니 본인이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가득 실은 책을 낳으시는 축복을 받으신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꼭 맛보게 하고 싶은 것이 주는 사랑이다. 조건 없이 주는 사랑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으면 좋겠다. 조건이 따르면 이미 사랑이라 할 수 없다. "나는 이만 큼 주는데 너는 준 게 뭐니?" 이것은 부부간에 암세포 같은 생각이다.

나누고 베푸는 삶은 땅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아서 결국 그 열매는 다 내꺼, 모두 내 것이 된다. 물론 미리 부메랑을 염두에 둔 배품은 행복 또한 촉촉하지 못하고 문제집에서 베낀 정답처럼 보람 없이 무미건조 할 터이다. 조건 없는 배품, 조건 없는 나눔, 조건 없이 주는 사랑의 설렘과 행복은 경험해본 자만이 알 수 있다. 록펠러처럼 경제적인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보람으로 행복이 쌓이고, 이해인 수녀님처럼 자비와 사랑이 풍부한 부자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아름다운 시가 축복으로 쌓인다.

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수필가

나 같은 속물인생은 겨우 욕심 한 덩어리 내려놓는 것도 엄청난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고 시간이 필요했다. 욕망을 쌓고 있었으니 돈도 사랑도 행복도 비집고 들어올 틈새가 없었든가 싶다. 이제 겨우 마음의 여유를 얻고 용서를 알게 되어 그나마 묵은 체증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나머지 욕망마저 내려놓으면 참 홀가분할 것 같다. 받은 은혜를 다 갚지 못해 늘 마음이 무거운데 사소하지만 누군가를 위해주고 감싸주는 정신적인 배품과 나눔도 그 열매는 내게로 오는 보람을 먹으며 산다.

무엇을 심든 그 열매는 내 것이 된다는 이치보다는 심을 때의 설렘과 보람이야말로 희망을 품은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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