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언제부터인가 정장에는 안 어울릴 것 같은 운동화가 더 멋스럽게 보인다.
스무 살 때 커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흰색 셔츠에 까만 정장 바지 그리고 까만 구두를 신어야 했다. 하루 종일 서빙을 하다 보면 발이 얼마나 뻐근한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사정 얘기를 하고 흰색 운동화를 신으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나름 열심히 서빙을 하던 탓인지 허락해 주었다. 운동화를 신으니 날 것만 같았다. 얼마나 발이 가볍고 좋던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당시 정장이나 비슷한 분위기의 옷을 입을 때는 꼭 구두를 신어야 했다. 그리고 중. 고등학교 내내 까만 운동화를 거의 신었기 때문에 구두가 신고 싶었다. 왠지 어른이 된 기분이랄까. 또 키가 작은 나는 운동화보단 구두를 신으면 슬쩍 키가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구두 굽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신발장에는 운동화보단 구두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신발장에 구두가 한두 켤레 있다. 구두 신을 일이 별로 없어서다. 마침 정장에도 운동화를 신으니 더 그런 듯싶다.
신발을 고를 때 나는 굽이 최대한 낮고 가벼운 것으로 한다. 가격 또한 저렴해야 한다. 그러자니 가끔 신발 굽이 없어 오래 걸으면 발바닥이 아프다.
또 신발장 한쪽에 안 신는 운동화가 있다. 아들이 사 놓고 안 신는 운동화다. 뭐 유행이 어쩌구 저쩌구 하며 잘못 샀단다. 자세히 보니 흰색이 맘에 들긴 하는데 신발이 컸다. 그래서 신발창을 더 깔고 운동화 끈을 질끈 묶었더니 나름 신을 만했다.
난 옷과 신발을 최대한 오래 입고 신는다. 뭐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게 옷과 신발에 대한 예의 같다고나 할까. 특히 선물 받은 옷이나 신발은 더 그렇다.
현재 옷이며 스카프는 20년 넘는 게 많다. 너무 오래 돼서 해진 티셔츠도 있을 정도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서 속에 입고 다니기에는 괜찮다. 그런데 운동화가 문제다.
가끔 나도 운동화를 닦는다. (운동화를 빨아 주는 곳에 맡기기에는 내 신발 가격이 너무 싸서 맞지 않는다,) 비누와 솔로 싹싹 닦는다. 그 다음 칫솔로 치약을 묻혀 닦는다. 그리고 매직 크리너로 또 닦는다. 처음에는 하얗게 반짝이기도 하지만 10년 넘으면 누렇게 반짝인다. 닦아도 닦아도 세월의 흔적을 지우기에는 어쩔 수가 없나보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새로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바로 흰색 운동화의 누런 부분을 없애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았단다. 설마 하는 나의 모습을 본 아내는 실험하는 것도 똑똑히 보았다며 아주 의기에 찬 모습으로 말했다.
그러더니 그날 저녁 신발장에서 흰색 운동화를 꺼내 실험에 들어갔다. 솔로 뽁뽁 닦은 운동화 위에 무언가를 붙이고 뗀 후 테라스 한쪽에 올려놓았다. 곧 하얗게 뽀송뽀송 눈이 부실 거란다. 다음날 한껏 기대를 품고 테라스에 가보았다.
세상에나! 흰색 운동화는 군데군데 누런 흔적을 더 남기고 있었다. 원래보다 더 누런 부분이 고양이 오줌 얼룩처럼 또렷하게 생겨났다. 그래도 아내는 곧 아까시 꽃처럼 눈처럼 하얗게 변할 거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의심이 가고 신발이 걱정되고 불쌍함 마저 들었다.
끝내 운동화는 기대와는 달리 얼룩이 남고 말았다. 당분간 아내의 새로운 정보는 믿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워낙 정이 든 운동화라 올 봄 더 열심히 신기로 했다. 정장 바지에도 청바지에도 많이 신을 것이다. 고생하는 내 발을 감싸주는 운동화. 더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봄을 향해 걸어 나갈 것이다. 더러 지치고 힘들 때가 있더라도 당당하고 힘차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