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날개가 자유롭지 못하다. 날고 싶어도 한쪽 날개가 고장이 나 고통스럽다. 그런데 자신의 몸을 인정하지 않고 날기만을 원하니 어쩌랴. 며칠 전부터 바위를 얹어 놓은 듯 양어깨가 묵직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통증은 더해져 입안에서 신음이 삐져나온다. 자유의 상징인 날개 역할은 둘째 치고 급기야 목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호기를 부리다 결국, 병원 신세를 지고야 만다. 큰 사고를 입은 환자처럼 목에 깁스하고 나타난다.

이제 날개도 접고 목까지 접을 형편이다. 코로나로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는 것도 눈치가 보여 궁리 끝에 요가 선생님을 집으로 모신다. 그동안 요가 덕분인지 어깨 통증이 그만하였는데, 한 달여 쉰 것이 병을 부른 것일까. 책상에 앉아 움직임 없이 일에 몰두한 결과리라. 선생이 누누이 피력한 몸과 영혼을 어디에다 팔아먹었는가. 정녕코 나를 강제할 사람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몸을 맡겨야만 다져지는 심약한 육체임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녀는 몸은 마음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줄곧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내면에서 바라본 나의 몸은 엉성할 게 뻔하다. 목의 깁스가 그 실체이다. 궁색한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생업의 현장에서 육체와 정신을 따로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산속의 도인처럼 도를 닦거나, 한유하게 명상 시간이 주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어디 직장이 그리 여유롭고 호락호락한 장소이던가. 시간을 다투며 긴장할 때도 있고, 일에 몰입하면 몸을 사리지 않는 성품이 병을 부른다. 그런데 자신의 몸을 일거수일투족 지켜보라고 하니 쉽지 않은 일이다.

선생은 수업 내내 '내면에서 바라본 몸은 어떠한가.'를 묻는다. 더불어 동작을 마친 후에 몸의 느낌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요가를 한 십여 년 동안 처음 겪는 말과 행동이다. 정녕코 몸을 톺아보는 일도 감각을 기억하는 행위도 낯설다. 몸이 뻣뻣한 나로선 선생의 동작을 따라 하기도 힘든 과정이다. 하루는 말초신경계인 발가락의 마디마다 접고 펼치고, 발바닥 표면을 손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이어 몸을 일으켜 바닥을 딛는 발바닥의 느낌을 알아차리란다. 손으로 구석구석 어루만진 발과 손대지 않은 발의 감각 차이를 느끼는 과정이다. 손가락으로 매만진 발은 밑면이 넓게 퍼지는 듯 바닥에 밀착된 느낌이고, 어루만지지 않은 발은 발바닥이 바닥에서 부유한 느낌이다. 정녕 두 발의 감각이 어찌 이렇게 다른가. 그런데 발은 이 느낌을 기억하고 몸을 제 마음대로 휘두른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몸은 마음의 집이다. 그 집을 다스리는 건 마음이다. 그런데 모든 일을 주관하는 몸과 마음을 외면했으니 병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굳어진 몸을 유연하게 만드는 데는 고통이 따른다. 날개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도 창밖의 새들은 보이지 않는데, 나는 밤마다 자유를 향한 날갯짓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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