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현수 충주경찰서 직장협의회 사무국장 경위

충남도 자치경찰위원회 오열근 위원장이 천안의 모 파출소에서 행패를 부렸다. 오 위원장의 혐의는 가지고 온 음료수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물이 든 종이컵을 경찰관에게 던졌다는 것이다. 자치경찰제와 관련,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 방문했는데, 경찰관이 불친절하게 답변했다는 게 이유였다.

오 위원장은 해당 경찰관이 다리를 꼬고 응대해 화가 났다고 해명했다. 이 사안을 접하고 나는 다리를 꼬았다는 경찰관의 태도에 주목했다. 불친절 같은 표피적인 판단은 보류하고 경찰관이 자치경찰위원장 앞에서 다리를 꼬았다는 건 경찰 내부 기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의도된 행위다. 경찰 내부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항의 표시는 없다. 동료로서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오 위원장은 본인의 신분을 먼저 밝혔다. 이 상황에서 경찰이 불편한 속마음과 달리 거짓된 태도를 내보였다면 이는 굴종에 다름 아니다. 위원장의 권위 앞에 굴종이 주는 안락을 찾아 교언하고 영색했다면 위원장은 이를 경찰 전체의 태도로 보고 더욱 기고만장했을 것이다.

자치경찰제 시행을 앞두고 토호세력의 경찰 장악과 사건 개입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이런 시기에 적절하게 경종을 울렸다고 볼 수 있다. 위원장의 공무집행방해에 대한 철저한 수사는 물론, 해당 경찰관에게 불이익이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위원장이 파출소를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도 엉뚱하다. 지자체와 경찰 간의 소통이 얼마나 부족했으면 경찰 분위기를 몰랐겠나. 이번 사건은 지자체가 경찰 의견을 얼마나 무시해 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찰의 조언과 우려를 무시해 온 지자체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자체의 태도가 이런 식이라면 자치경찰제는 해보나마나 실패다. 양측의 갈등과 반목, 불신과 증오가 심화될 것이다. 불편한 동거나 동상이몽 정도를 뛰어넘는 엄청난 불합치. 그 피해는 도민에게 애꿎게 돌아간다.

충북도와 도경찰청과의 갈등은 더욱 심각하다. 충남도는 자치경찰의 사무 변경·신설 과정에서 지방청장의 의견을 듣기로 조례에 확정했다. 자치경찰 사무 담당 공무원에 대한 재정 지원도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경찰관들 사이에 불신과 불만이 팽배한데 이조차도 외면당한 충북 경찰관들의 심정은 어떻겠나.

정현수 충주경찰서 직장협의회 사무국장 경위
정현수 충주경찰서 직장협의회 사무국장 경위

충북도는 지방청장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며 사실상 듣지 않겠다는 의도를 조례에 밝혔다. 재정 지원도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충북 자치경찰위원장이 파출소를 방문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리를 꼬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불만이 표출될 것이다. 충북도는 도내 치안 안정과 도민의 안위를 위해 치안 전문가인 경찰의 의견을 지금이라도 적극 수용해야 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