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비행기에 오르기 이틀 전에 제주도에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와 단 둘이서 머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잠시 마련되어 있으니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곧 가겠노라고 대답했다. 고향 친구인 그녀는 얼마 전 아버지를 여의고 마음이 아픈 상태였고 나 또한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병환과 코로나로 제대로 된 문상을 하지 못하여서 무거운 마음이었다. 미안한 마음도 전하고 서로 슬픈 마음을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제주도 공항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친구는 바닷가 드라이브를 먼저 시켜 주었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제주도에서 일정기간 살았던 친구는 제주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힘들었던 무거운 마음을 서로 나누며 어린 시절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보았던 친구 아버지의 모습과 삶에 대해 추모하듯 이야기도 나누었다. 친구 또한 나의 어머니에 대한 안부를 물으며 친구의 기억에 남아있는 어머니를 같이 걱정해 주었다. 자신의 슬픔보다는 상대의 아픔을 더 위로하던 우리는 어느새 부모를 떠나보내야 하는 나이가 된 것에 서글퍼하였다.

친구의 큰아들은 제주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그동안 살고 있던 집이 계약 만료되는 아들을 위해 친구가 미리 이사할 집을 구해 둔 곳에서 우리 둘이 사나흘 머물게 된 것이다.

깨끗하게 꾸며진 원룸을 살펴보다 나의 시선이 머문 곳은 침대 맞은편 벽면에 붙여진 글귀였다. '아빠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 멋진 00이' ' 귀욤이 00이'. 종이박스 위에 익살스러운 그림과 함께 쓰인 글귀를 오려 붙인 것이다.

"어머! 재미있다. 아들이 쓴 거야? 딸 부러울 것 없네" "응. 작은 아들이 쓴 건데 저게 사연이 있는 거란다. 택배 기사가 만들어준 추억이 너무 고마워서 버리지 못하고 붙여 둔 거야"

사연은 이러하였다.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작은 아들이 집으로 택배를 부쳤는데 아마도 박스가 파손되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동을 위해 다른 박스로 내용물을 옮기던 택배 기사가 파손된 박스의 날개 네 곳에 쓰인 위의 글귀를 본 것이다. 가족을 향한 사랑이 담뿍 담긴 아름다운 글귀마저 차마 버리지 못하고 궁여지책으로 그것만 오려서 새 박스 안에 함께 넣어 배송되었다는 것이다. 이 작업이 어디에서부터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는 택배기사의 아름다운 배려가 감동이었다.

며칠 전 올라온 기사에는 새벽 배송을 하던 택배 기사가 살려 달라는 비명 소리에 차를 멈추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했다고도 한다. 바쁜 시간이었지만 경찰서에 먼저 신고하고 울부짖는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차에서 내려 추가 범행을 막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도와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살려달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살려 달라는데 살려 주는 게 도리잖아요"라고 말한 택배 기사의 인터뷰도 눈길을 끌었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재빠른 판단으로 귀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지만 아무나 하지 못하는 용감한 일이다. 친구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바라보는 글귀 또한 택배에 종사하시는 분의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면 아이의 마음이 버려졌을 것이다.

주문한 물건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물품만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까지 배달한 택배기사 분들의 선한 영향력이 봄날처럼 고맙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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