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인생이라고 한다. 태어나서 잠시 머무르다가 변해서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면 얼마나 허무한가.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일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니 이게 사는 건가 하고 회의가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코로나도 끝날 것이고 일상도 회복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예전처럼 그렇게 살아야 할까. 코로나가 그동안 인간이 저지른 환경 파괴의 역습이라니 뜨악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오면서 늘 질문하는 것이 있다. 살아가는 맛이 무얼까. 살아가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를 세 가지로 정리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건 재미, 의미, 묘미이다. 재미는 말 그대로 자신에게 확 당기는 맛이고, 의미는 자신에게 뭔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럼 묘미는? 이게 규정하기가 참 어렵다. 풀이하면 묘한 맛인데 이게 뭘까. 나는 이를 감동이라고 정의한다. 알 수는 없지만 안에서 터져 나오는 짜릿한 맛,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생동하는 희열 같은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산을 오른다고 하자. 산은 좋아하는 사람이라야 오른다. 즉 산을 타는 것이 재미가 있어야 한다. 또 뭔가 산이 주는 의미가 있어야 산을 찾는다. 오르고 나서의 짜릿한 맛, 오른 길을 내려다보며 만산을 굽어보는 그 맛은 묘미다. 재미와 의미, 묘미가 어우러져 산과 내가 하나가 된다. 그야말로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라서 세 가지 맛을 모두 느끼는 것이다.

논어 학이편 1장에,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라는 말이 나온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논어 편집자들은 아마도 이 세 가지 말이 공자의 삶을 모두 담을 수 있다고 보아 첫 장에 놓은 것 같다. 나는 이 세 가지 말이 너무 좋아 늘 입에 달고 산다. 배우고 익히는 기쁨은 재미요, 배우고자 찾아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즐거움은 큰 의미다. 그 어려운 춘추시대에 제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늘과 땅이 알아주니 이는 묘미다. 공자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다. 재미와 의미, 이에 묘미까지 더하여 제자를 가르쳤으니! 학교 수업도 이렇게 하면 좋겠다.

삶의 매 순간에서 이 세 가지 맛을 느낄 수는 없을까. 무엇을 하든지 재미를 느끼고, 의미가 있고, 거기에다 감동까지 솟아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고전 공부에서 이 세 맛을 느끼고 있다. 코로나로 사람을 만나지 못하니 책을 대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인문학 고전이 참 좋다. 요즘은 그동안 공부한 논어를 다시 새김질하고 있다. 고전은 무엇보다 재미가 있고, 살아가는데 뭔가 찌르는 듯한 의미를 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 이거구나 하고 깨달음을 안겨준다.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그것은 감동이요, 묘미다.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맛이 나듯이, 우리의 삶도 맛이 나야 살 수 있다. 이를 '살맛'이라고 하지 않는가. 살맛 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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