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봄 내음이 사무실에 가득하다. 지난 가을까지 예쁘게 피웠던 꽃과 나무를 겨울이라 사무실에서 난로를 피워가며 애지중지 키워낸 화초들이 제법 파아란 새싹이 돋는 가하면 이름 모를 꽃 나무에 꽃망울이 피어난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다. 살며시 다가가 잘 자라주어서 고맙고 예쁜 몸짓으로 재롱까지 보여주어서 감사하다고 대화를 나눌 양이면 웬지 모르게 마음이 밝아온다.

어디 화초들뿐이랴, 우리네 사람도 별반 다름이 없다. 화초가 사람의 애정을 먹고 자라듯이 우리사람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주고 받으며 행복을 구가한다. 그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귀중하고 가까운 인생의 동반자가 바로 아내이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너무나 소중한 아내라고 생각하고 감사함을 가지고는 있지만 좀처럼 그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종종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다.

얼마전 청주에 있는 아들과 며느리가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옆에 있는 나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엄마, 미안해, 엄마생신날 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직장관계로 좀 그러네, 고마워, 잘 길러주어서 하며 아들이 말끝을 흐린다. 아내 역시 약간은 울먹이면서 그래, 우리아들, 엄마는 괜찮아, 애들은 잘 크고 있지? 에미도 잘 있고 하며 두루 안부를 묻는다. 옆에 있던 며느리가 이어 어머님, 죄송해요, 가서 뵙고 생신축하 해드려야 하는데요, 늘 어머님께 감사드려요 하며 생일 인사를 한다. 아내역시 괜찮아 에미야, 너희들만 잘 있으면 되, 여기는 걱정하지마, 모두 잘 있으니까 알았지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옆에 있던 나는 모른척 하며 여보, 왜 애들이 전화왔어? 하며 슬며시 물어본다. 아니, 내 생일이 이달 16일이니까 생일날 못 온다고 미안해서 전화왔지 뭐, 잘 있데? 응, 모두 잘 있데, 그래, 잘 있으면 되지 뭐, 섭섭하게 생각하지마, 내가 있잖아 하니 아내는 피 웃으며 알았어요 하며 거실로 나가버린다.

이건 또 왠 일인가? 전화를 끊자 마자 조금후에 원주에 있는 사위와 딸이 역시 아내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전화가 왔다. 사위가 생일날 저녁을 모시겠다고 하니 아내는 식당보다는 우리집에서 간소하게 저녁을 하자고 한다. 정말 가족이 소중하다.

돌이켜 보면 아내도 다른 아녀자처럼 어려운 가정에 와서 부족한 나를 도와 일평생 교육현장에 몸담게 했으며 자녀들 또한 각기 처한 곳에서 제몫을 감당할 수 있도록 잘 양육했다. 또한 자녀들도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 손자손녀들까지 우리내외에게 안겨주었다. 그러니 나와 아내는 더 바랄것이 없다. 그럼에도 아내는 지금도 일을 놓지 않고 직장을 가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일날 아침 출근하면서 하는 말 여보, 당신 오늘 사무실로 꽃바구니 보내지 마, 알았지요?하며 여느 때와같이 출근한다. 속으로 어참, 내가 어제 잘 아는 꽃집에 이미 주문해 놨는데 하고 혼자서 웃고 말았다. 어제 꽃바구니를 주문할 때 여사장님이 물었다. 보내는 분을 누구라고 쓸까요? 그래서 한참후에 이렇게 써 달라고 했다. 남편보다는 영원한 해바라기 라고 말이다. 그분도 좋다고 하며 내일 아침 사무실로 보내주시겠다고 했다. 나 역시 하루 일을 하기위해 내 사무실로 나갔다. 오전 10시가 되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예, 올 것이 왔구나 하며 전화를 받으니 그 여사장님이 사무실로 오셔서 사모님, 생신축하드려요 하며 꽃바구니에 케익까지 가져오셔서 덕분에 온 직원이 생일파티를 했다며 고맙다고 했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래서 나는 휴대폰에 메시지를 이렇게 보냈다. '여보,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고생만 시켜서 미안해요' 그리고는 아내의 생일 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어 보냈다. '봄내음 가득한날/ 아내의 생일이라// 작은맘 정성다해/ 보내준 꽃바구니// 지나온 삶의 여정에 사랑날개 젖히네' 이렇게 말이다.

다시금 생각해본다. 고운 인연으로 맺어진 부부연이 아니던가. 함께 살아 준 것도 감사한데 남은 시간도 함께 살아갈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바라기는 아내의 남은 삶의 여정에 해바라기처럼 밝은 웃움만 넘치기를 빌어본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