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류시호 시인·수필가

'어느 해 봄 날/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을/ 아지랑이 따라서/ 자전거 타고/ 혼자 간 적이 있다/ 먼~ 먼 기억 속이지만/ 저 길 모롱이에서 만난/ 들꽃 꺾어 든 소녀/ 눈빛이 왜 그리 따사로운지/(중략) 그리움만 내게 남는구나.' 이 시는 서울지하철 안전문 공모전에 당선된 '추억 속의 봄 길'이다. 지방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자전거 타고 과수원이 있는 버드나무 숲길을 지나며 만난 소녀를 생각하며 썼다. 봄이 되면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얼마 전, 일본 히라노 게이치로의 베스트셀러 소설 '마티네의 끝에서'를 원작으로 한 '가을의 마티네'라는 애절하면서도 가슴 아픈 영화를 보았다.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마키노 사토시(후쿠야마 마사하루)는 프랑스 언론사의 기자 고미네 요코(이시다 유리코)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요코에게는 오래된 약혼자가 있고, 사토시도 각종 음악 콘서트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파리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요코의 동료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상처 입은 그녀를 사토시가 위로하며 둘은 친해진다. 그러다가 사토시가 스페인 마드리드로 공연하러 가며 파리에 들러 데이트를 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도쿄에서 만나기로 한 날, 휴대폰을 택시 안에 놓고 내리면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세월이 가고 각자 길을 가다가 사토시의 뉴욕 기타공연에서 재회한다. 그리고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서로의 진심을 전하고 미소 지으면서 끝이 난다. 그런데 이들의 데이트 장소 파리, 도쿄, 뉴욕, 그리고 스페인 마드리드는 필자도 가본 적이 있어 이 영화의 아름다움이 진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인생에서 운명적 상대를 만나 진정한 사랑을 하고 추억도 남긴다. 남녀의 운명적 러브스토리는 사랑의 아픔을 통해 성장하고 애틋하고 아련한 여운을 전한다. 필자는 군대 가기 전 고향 집에서 잠시 쉬며 여자 친구를 떠나보내고 입대를 했다. 방학하면 버드나무 숲 근방 그 친구네 과수원 원두막에 몇 명이 모였다. 그리고 문학과 신학을 이야기하고 밤 깊은 줄 모르며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남아있다. 하얀 교복과 쑥색 교복을 입은 소년 소녀 시절, 추억 속의 봄 길 시와 같은 아련함은 군 복무를 하면서 허전하였지만, 아픔을 잘 이겨냈기에 더욱 성숙한 젊은이가 되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따사로운 봄볕은 여심(女心)을 흔들기도 한다. 누구나 기다리는 희망의 봄인데, 나이를 먹을수록 감성(感性)을 잘 유지하며 살아야겠다. 진짜 사랑은 왜라고 묻지 않고 괜찮아하며, 감성을 잃지 않고 노력해야 가능하다. 자전거 타고 갔던 미루나무 숲과 원두막이 있는 '추억 속의 봄 길' 소녀와 영화 '가을의 마티네' 속의 연인들 사랑처럼, 살아가는 데 큰 힘은 감성을 살리는 것이다. 감성을 잘 유지하고 산 사람에게서는 인생의 향기가 우러난다고 한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다산 정약용은 걷는 것은 청복(淸福) 맑은 즐거움이라고 했다. 봄의 시작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찌던 마음 내려놓고 즐거운 마음으로 봄 아지랑이 따라 마음을 열고 걸어보자. 엊그제 봄옷 갈아입은 연두색 나무가 흥얼거린다. 따사로운 햇볕도 아지랑이 속으로 휘파람 불며 달려간다. 속도를 늦추고 현재를 즐기는 여유를 갖자. 봄 길을 걸으며 생각나는 것은 감성을 살리고 지인들과 정(情)을 나누며 살아야겠다. 우리 모두 연초록 나무들과 봄꽃, 봄의 노래 흥얼거리면서 자전거 타고 봄 길을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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