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이전투구(泥田鬪狗), '개들이 진흙탕에서 싸우는 형국'이란 뜻이다. 자신이나 파당(派黨)을 위해서 죽기 살기로 볼썽사납게 싸우는 것을 비유한 조선시대산(朝鮮時代産) 고사성어다. 사연은 이렇다. 조선 개국 시 이성계가 정도전에게 전국 팔도인물평을 명했다. 정도전은 충청도를 청풍명월(淸風明月), 황해도를 춘파투석(春波投石), 전라도를 풍전세류(風前細柳), 경상도를 송죽대절(松竹大節) 등 일곱 개 도를 비유한 뒤 나머지 함경도를 고민하다 '이전투구'라 했다. 하지만 정도전은 이성계가 몹시 불쾌한 모습을 보이자 곧바로 '석전경우'(石田耕牛, 자갈 비탈밭을 가는 우직한 소)라 바꿨다. 이성계가 함경도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그저 역사적 에피소드라 치부할 수 있는 여기에는 문인 정도전의 깊은 속내에 숨어있었다. 당시 후원 세력으로 무인이 없었던 정도전은 무인 이성계를 이용해 역성혁명을 일으키려 했지만, 오히려 이성계에게 이용당하자 그 억울함과 불만을 교묘하게 발화한 것이다. 여기서 아주 못되고 고약한 정치사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전투구 출신 이성계의 후손이 왕이 되었고, 조선 시대 왕들은 이전투구의 유전자를 내려받았고, 그 신하들 부지불식간에 왕의 이전투구 유전자를 내려받고 학습하지 않았을까? 현재 우리 정치를 보면 당연히 눈여겨볼 부끄러운 역사다. 조선 500년 내내 정치는 양쪽으로 갈려 정당성과 합리성이 모자란 채 끝까지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른바 붕당정치에 함몰되어 있었다.

이런 정치적 유산은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광복 이후에도 좌우익 이분법적 대립에 시달려 건실한 정치의 싹을 발아시키지 못했다.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흑백논리에 몰입되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인, 인간 같지 않은 인간(疑似人)들만 위한 정치 말이다. 박정희 정권 등 군사정권은 도외시하더라도 1987년 체제(민주화 체제) 이후 역시 정치인들은 올바른 정치를 펼치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진보와 보수의 한바탕 진흙탕 싸움과 다름이 아니었다. 내 편과 네 편을 철저하게 갈랐다. 무 자르듯 말이다. YES or NOT, 제3 혹은 제4의 선택의 여지는 없다.

권력을 포획한 정치집단(집권당)은 이런 구태의연한 정치를 철저하게 실행한다. 내 편은 영원하고 챙기기에 철저하다. 범죄자라도 문제시하지 않고 능력이 없어도 괜찮다. 그저 과거에 내 편이었고 현재 내 편은 만사 OK이다. 반면 내 편이 아니면 철저히 배제하고 적대적이다. 한 치의 양보와 배려, 화합과 인용이 사라진 정치다. 문제는 이런 정치에서 벗어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갈수록 태산이다. 패거리 정치가 판치고 있다. 몽둥이와 칼만 안 들었지 언어의 천박과 폭력, 양두구육 등의 행태를 보면 동네 건달도 이들보다 낫다.

정치인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옛말이 있다. 아쉽게도 중국의 것이지만 말이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아 높은 산이 되었다 (泰山不辭土壤 能成其大).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아 그 수심이 깊다 (河海不擇細流 能就其心).'(사기). 진시황이 진나라 출신 신하들의 반대에도 초나라 출신 이사(李斯)를 축출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이사는 진의 천하 통일에 견인차 구실을 했다. 최고 권력자의 내 편만 챙기지 않은 진시황의 용인술 덕분이었다.

'하천과 연못은 더러운 물을 받아들이고(川澤納汚), 산과 늪은 독충을 숨어 살게 한다(山藪藏疾)'(춘추좌씨전). 원래 이 말은 '왕이 다른 나라와 외교에 있어 불리함과 난처함을 임시방편이 아닌 신중하게 해결해야 한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는 '권력 집권자(우두머리)가 내 편만 챙기지 말고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널리 포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외연이 확대되었다. 집권자는 논공행상에만 그치지 말라는 경고다. 제 식구만 감싸지 말라는 얘기다.

우리 정치는 칼자루 쥔 자의 칼부림과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이 제 마음대로다. 민심을 들먹이지만 결국 그것은 구실에 불과하다. 내 편이 아니면 영원히 적으로 간주한다. 아량도, 배려도, 포용도, 화합도, 관용도 없다. 기차선로가 영원히 만나지 않는 것처럼 그 적대의 골은 좁혀지지 않는다. 봉합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언어폭력과 겁박이 횡행할 뿐이다. 협치의 기대는 연목구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그리고 왜 우리 정치사엔 '이전투구'는 있고 '태산불사토양' 등의 잠언은 없는가? 정치인들이 쌈박질만 했지 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고 그런 패거리들만 모였으니 신선하고 건설적인 정치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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