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최원영 세광고등학교장

백석, 일곱 해의 마지막(2021 '책 읽는 청주' 선정도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발췌)

시인 백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겨 암송하는 낭만적인 시다. 백석은 한국의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며, 김수영과 함께 교과서에 가장 많은 시를 올린 시인이기도 하다. 2012년에는 백석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활발한 기념사업이 펼쳐졌고 그의 시를 소재로 한 뮤지컬도 큰 인기를 끌었다. 해방 이후 북한에 남아 잠깐 문학 활동을 했을 뿐 행적이 베일에 싸여 신비감으로 그 유명세가 더한 시인이기도 하다. 특별히 1996년 백석의 연인이던 '자야' 김영한 여사가 자신이 운영하던 성북동의 요정 '대원각' 부지 7천 평을 법정스님에게 기부하며 시인의 존재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대원각은 길상사라는 절로 맑고 향기롭게 변모하면서 법정스님의 낡은 의자, 조각가 최종태선생의 단아한 보살상과 더불어 서울시민이 즐겨 찾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1912년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은 민족주의 교육의 요람인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아오야마 영어사범과에서 수학한 후 귀국하여 1936년부터 조선일보에서 근무하였다. 기자로 활동하며 시집 '사슴'을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백석은 이년 뒤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며 교육자로도 활약하였다. 1940년 태평양전쟁의 불안한 정세를 피해 만주 신경으로 간 백석은 안동세관에 근무하며 은거하다 해방을 맞았다. 분단 이후 북한에 남은 백석은 잠시 오산학교 은사인 조만식 선생의 보좌역을 지낸 것 외에는 뚜렷한 족적 없이 문단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백석의 대중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점도 많다. 시에 등장하는 나타샤, 곧 자야 여사와의 로맨틱한 연애에도 불구하고 4번의 결혼을 했다는 것, 그 중에는 한때 북한이 자랑했던 음악가 문경옥과 일 년간 가정을 꾸린 결혼 생활도 있다. 평안도 방언을 통해 우리의 모국어를 풍요롭게 만든 이면에는 영어는 물론, 러시아문학의 번역가로 능통했음은 널리 소개되지 않고 있다. 특히 1959년, 48세 되던 해에 당의 지시로 북한 최고의 험준한 오지, 삼수(三水)로 파견되어 1996년 85세의 일기로 생을 다할 때까지 37년간 양치기로 살아간 이력에 대해서는 신비에 싸여 있다. 시의 내용처럼 '세상한테 진건지, 시인이 세상을 버린 건지'는 알지 못한다. 말년의 쓸쓸한 행적은 지금도 모두에게 의문이고, 그런 점에서 백석에 대한 연구는 시인 안도현의 표현대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원영 세광고 교장
최원영 세광고 교장

2021년 '책 읽는 청주' 선정도서로 채택된 '일곱 해의 마지막'은 북한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던 시인 백석이 7년 동안 몸부림치다 서서히 양치기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작가 김연수는 북한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명의 인간으로 사라져가는 시인의 모습을 마치 오랜 앨범의 흑백사진을 넘기듯 담담히 서술한다. 이 책은 시인으로서의 뜻은 고결했으나 엄혹한 시대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간 백석의 삶과 아픔을 조명하고 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는 그의 유명한 시구는 바로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백석의 말년 자화상일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