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내 이름은 '시선'이다. 물론 한자가 따로 있다. 한자를 발음하니 그냥 시선이다. 돌림자가 '시'인데 뒤에 한 글자를 더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성과 함께 발음하다 보면 연음이 잘되지 않는다. 가끔 엉뚱하게 부르거나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 이름이 맘에 들지 않은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시선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시선 집중, 바로 이것이다. 하도 이 말이 방송이나 언론에서 쓰이니 어떤 때는 왜 자꾸 시선을 집중하라고 해? 나 여기 있어! 이렇게 속으로 장난기가 돋곤 했다. 훈민정음을 공부하고 나서는 명패도 한자에서 한글로 바꾸었다.

시선 집중! 나는 이 말을 즐겨 써먹고 있다. 나를 소개할 때나 서먹한 분위기를 돌파할 때 두루 활용하고 있다. 시선이란, 말 그대로 눈이 가는 길이다. 주의나 관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보통 말할 때는 눈이 가는 방향을 가리킨다. 주의나 관심도 결국은 시선을 끄는 일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눈길'이다. 요즘 논어를 공부하면서 시선 집중의 경지를 발견했다. 다름 아닌 공자의 이 말이다. "분이 일어나면 끼니도 잊고, 즐거워서 걱정도 잊으며, 장차 늙음이 닥쳐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 논어 술이편 18장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 나이 60세가 좀 넘었을 때, 초나라 대부 섭공이 제자인 자로에게 "당신의 스승은 어떤 사람이냐?"라고 물었는데, 자로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알고 공자가 자로에게 안타까워 한 말이다.

공자, 그는 누구인가. 왜 공자의 어록인 논어가 오랫동안 뭇 사람들에게 읽히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두루 통하는 고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화도 있다. 어느 날에는 소(韶)라는 순임금의 음악을 듣고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몰랐다는 공자의 고백도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음악으로 사람이 완성된다고도 말했다. 공자는 어디에 심취하면 모든 것을 잊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런 경지를 '시선 집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신을 한 곳에 쏟으면 무엇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 하는 말도 있지만, 왠지 시선 집중이라는 말이 더 멋지다.

시선을 어떻게 집중할 것인가?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또 때와 상황에 맞게 시선을 집중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를 중용에서는 '시중(時中)'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필요할 때 적절하게 나서서 일이 되도록 하거나, 배워야 할 때 열심히 공부하여 뭔가를 이룬다면 그것은 시중이다. 아프고 힘든 사람이 있을 때 도와준다면 그 또한 시중일 것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실천은 어렵다. 하여 이러면 어떨까? 시선 집중으로 최선을 다하자! 가운데에서 시자를 빼면 최선이니까. 나는 이렇게 하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뭔가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적이 있다. 그것은 시중이었다.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5월 햇볕이 내리쬐는 교정을 거닐어 본다. 앗, 저기 가섭산이 보인다. 가섭산은 음성의 진산이다. 붓다의 제일 제자 가섭에서 따온 말이다. 붓다가 한 송이 꽃을 드니,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오직 가섭만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를 염화미소라고 한다. 이 또한 시선 집중이 아닐까. 최고의 시선 집중, 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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