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유월은 수수한 감자꽃처럼 조용히 오기도 하고 모내기 끝낸 논에서 우는 개구리 울음소리처럼 왁자지껄하게도 온다.

호국영령들의 넋을 생각하면 찔레꽃 향기처럼 잊었던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초록빛이 넘실거리는 들녘은 살아있는 생명력을 느낀다. 평화로운 풍경은 목숨을 버리고 나라를 구한 선열들 덕분이다.

오월은 싱그럽다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칠월은 여름의 한복판이라고 열정을 이야기한다. 오월과 칠월 사이의 유월은 왠지 조용히 지나가야 할 것 같은 엄숙한 달이다.

누구나 인생에 있어 꽃피는 시절이 있다. 사람마다 화양연화는 다 다르겠지만 중학교 때 투병 중인 아버지를 떠나보낸 여자아이가 있다. 그녀는 예술의 전당 구석 의자에 앉아 훌쩍거리며 글을 썼다. 백일장 제목은 6월이었다.

'유월은 젊은 사람의 달이다. 초록빛이 넘실거리는 유월이면 생명력이 충만한 젊은이의 달 같다. 그러면서 한창나이에 고생만 하다 가신 아빠가 생각난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더 잘해 드릴걸, 더 대화를 나누고, 더 심부름을 잘해 드리고, 더 같이 운동해 드릴걸….

어느 순간 아빠는 양궁장으로 운동 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 상태가 좋건 나쁘건 간에 양궁장으로 가는 아빠. 항암 주사를 맞으면서도 발길을 멈추지 않으셨다.

주말이면 학원도 가야하고 친구도 만나야 하는데, 아빠는 운동을 하러 같이 가자고 하셨다. 혼자 얼마나 외로우실까 싶어 처음에는 같이 가 주었다.

차츰차츰 아빠하고 운동하는 것보다 친구와 만나서 영화도 보고 이야길 나누었다.

아빠의 투병 생활은 계속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아프셨는데 중학교 때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오랜만에 양궁장 트랙을 같이 걸은 적이 있다. 항상 앞장서던 아빠가 뒤에서 오신다. 헉헉거리면서 내가 평상시 걷는 걸음도 못 쫓아오고 계신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암세포가 퍼져서 몸이 많이 안 좋으신 상태였다.

누군가 유월은 우울하다고 했다. 하지만 난 일부러라도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신록이 우거진 숲마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유월이다.

아빠는 인생의 열두 달을 못 채우고 가셨다. 꼭 유월만큼 살고 가셨다.

무대에서 연극을 한다. 역할에 맞게 연기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아빠는 지금까지 아프셨고 내 곁은 떠난 건 연극이었노라고, 잠시 연기를 한 것이라고 다시 내 앞에 짠하고 건강하신 모습으로 나타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런 상상이 지금의 나를 견디게 한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서 살면 '우리 딸 장하다' 어깨 두드려주러 오실 것이다.

그래서 내게 유월은 희망의 달이다.

누구나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시절이 있다. 슬픔을 이기고 애써 희망의 달이라고 표현한 그녀.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해서 후회가 된다며 엄마 생일날 혼자서 선물 준비하고 케이크에 불을 켠 다음 '사랑한다'는 말을 되풀이하였다. 유월이 되면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세상의 그녀들에게 '괜찮다' 작은 위로를 보내고 싶어진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세상에는 헤어져 사는 많은 이들이 있다. 함께 하지 못하는 이별의 고통과 그리움을 안고 산다. 호국영령의 후손들, 그녀처럼 가족을 잃은 한부모 가정, 조부모 가정에서 힘겹게 자라는 아이들에게 희망이 있기를, 모두 삶의 성취가 있기를 소망해본다. 이 유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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