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조영의 수필가

A 선생님과 나는 나이 차이가 열 살이 조금 넘는다. 같이 만나는 사람들은 언니라고 부르는데 나는 언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이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모에서 풍기는 카리스마와 놀라운 기억력, 해박한 지식과 재담은 무궁했다. 함께 있으면 분위기는 훈훈했고 유쾌했다. 창작활동에서도 낭만적 지성과 독창성은 독보적이라 믿었다. 아무도 뚫을 수 없는 방패 같은 그의 삶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 것은 단순해진 어휘였다.

부정 언어만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우울하다, 기분 나쁘다, 재미없다. 덧없다….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아프다'이다. 만나면 아프다는 말부터 한다. 아픈 곳도 여러 곳이어서 통증을 호소하는 짜증 섞인 말과 앓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도 아픈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위로하고 반응할수록 목소리는 높아지고 상대에 대한 원망과 질책으로 흥분하면 표정이며 동작과 말투까지 다른 사람처럼 보여 낯설었다.

신호등의 노란색은 대화에도 필요하다. 멈추고 기다리는 동안 다른 방향의 차들이 달리어 거리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듯, 대화에서 멈춤의 배려가 없는 그에게 조금씩 지쳐갔다.

오십 대 초반이던 나는 아프다는 말을 이해 못 했다. 그래서 아프다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가볍게 흘렸다. 나는 늘 바빴고 지쳐있었다. 그래서 만나면 격조했던 시간만큼 좋은 이야기 나누고, 소리 내어 웃고, 토론하고 싶은 주제는 냉철하게 비판하고 싶었다. 갈증 해소가 휴식보다 간절했다. 그러나 탄식과 괴이한 표정에서부터 기대는 무너지고 만나는 시간이 어색했다. 충만 없는 만남은 무의미했다. 실망하고 귀찮은 감정만큼 거리도 멀어졌다.

지금, 나는 A 선생님이 아프다던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여러 곳이 아프다. 건강은 자신 있었는데 잃는 것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순간이다. 정말 아픈데 나보다 젊은 동료에게 말하지 않는다. 가족에게도 머뭇거린다. 내가 그랬듯이 관계없는 말은 귀 기울이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아프면 혼자 중얼거린다. 이상하게 속 시원하게 말하고 나면 덜 아픈 것처럼 느껴진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보이지 않는 고릴라'는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과 관련이 있어서 집중하는 것만 보이는 것을 말한다. A 선생님에게 나는, 보이는 것만 집중하다 보니 진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공감은 똑같은 경험을 통해서 온전히 느끼고, 소소한 말도 들어줄 사람이 곁에 있음은 행복하다는 것과, 아프다는 말은 외롭고 관심 받고 싶은 감정의 이면이라는 것을 아프고 나서야 알았다. 그래서 쓸데없는 말이 많아진다는 것도. 평소에도 말 많던 내가 부척 말이 많아진 요즘, 가장 무서운 것은 '아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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