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영희 수필가

맑고 높은 하늘에 구름이 끼는가 싶더니 빗줄기가 쏟아진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를 그저 시원하다 생각하고 내리는 모양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빗방울은 사선으로 내리 꽂히더니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큰 물방울이 수직으로 쏟아지니 금세 무심천 물이 늘어나 수계가 높아지는 것 같다.

내리 붓는 빗방울이나 받는 무심천이나 아무 구분을 짓지 않고 조화롭게 화합하는데 땅 위의 사람들은 하천이나 산을 경계로 행정구역이나 국가 간 구분을 짓는다. 무심천을 경계로 상당구, 서원구가 갈리고 한강을 경계로 강남과 강북이 갈린다. 저렇게 합쳐진 물은 막히면 돌아가고 경사가 지면 낙하하여 더 큰 강이나 바다로 나아간다.

코로나 예방주사를 신청하는 기간이라 이왕 맞는 것 제 때 하자 싶어 매뉴얼대로 하는데 컴퓨터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벌써 노약자나 어르신이란 말을 들어야 하나 싶어 남의 신발을 신은 듯 불편했는데, 이래서 그렇게 부르는구나 싶어 쓴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의지의 한국인이 포기할 소냐' 싶어 다시 매달렸다. 십여 번을 헛손질하고 나니 막히면 돌아가는 물의 지혜가 떠올랐다. 신청하는 사람이 많아서 과부하가 걸렸나 보다 생각하고 딴청을 피우다가 이틀 후에 다시 해 보았다. 국민비서 서비스에서 신청이 됐다고 그제야 연락이 왔다. 그러면 그렇지, 아직 인터넷도 잘 못 하는 노약자 어르신은 아니라는 위안이 들었다.

신청한 날짜에 주사를 맞고 이상이 있을까 걱정했으나 조금 추운 것 외에는 괜찮았다. 만 3일이 지나고 예방주사를 겁내는 친구들이 있는 카톡 방에 경과보고를 했다. 잘했다는 칭찬이 쏟아지며 친구들도 신청을 하겠다고 한다.

어떤 지침이나 제도가 시행될 때, 변화를 두려워하는 우리는 우선 겁부터 낸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중병 환자처럼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불편하지 않은지 뉴스에서 이상이 발생했다고 하면 그 경계의 벽을 더 높이 쌓는다.

고정관념은 나이에 비례한다니 코로나 예방주사를 먼저 맞는 연령대를 말하여 무엇 하리.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거나 어느 예방주사는 꼭 이상반응을 일으킨다는 말이 그렇다. 먼저 맞아 보니 너무 따지지 말고 흐르는 물같이 서로 보내고 받아 섞이면서 순응하는 자세가 삶의 지혜라는 터득이 되었다.

이영희 수필가
이영희 수필가

그래서 직지심체요절을 초록하신 백운화상은 '무심가'에서 이렇게 노래하셨나 보다. '만일 사람의 마음이 억지로 이름 짓지 아니하면 좋고 나쁨이 무엇을 좇아 일어나겠는가. 어리석은 사람은 경계만 잊으려 하되 마음은 잊으려 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잊으려 하되 경계를 잊으려 하지 않는구나. 마음을 잊으면 경계가 저절로 고요해지고 경계가 고요해지면 마음이 저절로 움직이지 않나니. 이것이 바로 무심(無心)의 진종(眞宗)이니라.'

경계를 짓지 않는 빗방울이 여전히 무심천에 떨어진다. 때로는 무심함이 정신건강에 가장 좋다고 일러준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무심천가 수목은 갈맷빛으로 한 뼘씩 더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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