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아파트 문화 속에 살다 한적한 마을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지 벌써 일곱 해가 지났다. 주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밭에는 맨 흙 위에 철퍼덕 앉아 불편하신 다리로 엉덩이를 밀며 새벽부터 일하시는 앞집 할아버지 모습이 보인다. 밥 먹는 시간외에는 온 종일 밭에서 살다시피 하시는 할아버지의 생명줄은 물이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면 영락없이 또 싸움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시골마을이지만 이웃사촌 인심은 옛말이다. "저 영감탱이 제 정신이 아니야. 썩을 놈, 죽일 놈. 치매야 치매." 육두문자가 난무하는 욕설은 기본이고 삿대질에 악다구니를 쓰며 서로 달려든다. 한 평의 땅. 한 줄기의 생명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끝내 멱살잡이 큰 싸움으로 번진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도 어찌하지 못하고 번번이 돌아가기 일쑤다.

사실 농부들에게 물은 생명 그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꼬싸움은 대를 이어 원수지간이 되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평화가 깨진지 이미 오래다. 시골에 농사지을 사람이 없고 관개시설이 잘 되어있어 마을농사의 대부분을 기계로 짓는 요즈음. 물 때문에 싸우는 아이러니컬한 두 얼굴을 눈앞에서 보는 것이다. 논바닥만 갈라지는 게 아니라 농부의 마음도 타들어 거친 사막이 되는가 보다.

이곳에 터를 잡고 들어오면서 첫 번째 부딪힌 문제는 농업용과 식수 구분 없이 사용하는 물 때문에 몹시 황당했다. 일 년치 물세를 똑같이 내고 다 같이 사용하는 동네 지하수임에도 고놈의 물 때문에 허구한 날 동네가 시끄럽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이 불구경, 싸움구경이라지만 물을 지키고 빼가려는 크고 작은 싸움으로 마음 밭까지 점점 딱딱해져 이웃 간 인심은 이미 메말라 버렸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물이 콸콸 넘쳐나 이웃들이 평화롭게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지난 해 우리 마을이 시간당 최고 200㎜의 물 폭탄이 쏟아져 삽시간에 수중도시로 변했다. 산비탈 지반이 약해져 공원묘지 토사가 유출되어 산사태는 물론 하천 범람으로 침수·단수·정전으로 농작물 피해가 컸다. 20여년 만에 있는 재해였다고 한다. 간발의 시간차로 먼저 집을 나온 나에게 차오르는 물길을 보며 "엄마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아~" 딸아이는 동영상으로 실시간 홍수상황을 보내왔다. 홀로 지내시는 할머니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전국에서 보내 온 성금과 적십자후원으로 새 집이 지어졌고 복구 작업을 통해 마을로 들어가는 튼튼한 새 다리가 만들어졌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우리 동네 월운천(月雲川)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말이 없다. 징검다리 건너며 물장구치고, 밤이면 각양각색 은은한 불빛에 온 가족들이 산책할 수 있는 도심 속 쉼터. 맑고 푸른 생태 환경을 연결한 관광명소로 거듭나는 마을이 만들어져 평화롭게 지내는 꿈을 꾼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울리는 초록의 숲과 물이 살아나는 생태하천으로 거듭나면 좋겠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멀리 20층이 넘는 아파트공사가 한창이다. 저쪽은 도시요 이쪽은 농촌이다. 개발붐에 밀려 어느새 도시와 농촌의 경계선 상에 있는 이 곳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여전히 지하수를 먹고, 하루 열두 번 운행하는 버스 시간을 기다려 타고 나가야하는 농촌마을이다. 얼마 전 동네 상수도 공사가 시작 되었다. 각자 쓴 만큼의 물세를 내면 전쟁같은 물싸움은 더 이상 볼 일이 없겠지만 지금도 이웃들 간 물꼬싸움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지, 제비꽃, 매밭톱, 송엽국, 페츄니아는 지천으로 꽃망울을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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