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고개를 바짝 들고 허공을 향해 전진 하는 넝쿨 식물을 바라본다. 넝쿨 식물의 종류는 참으로 많다. 으아리 ,참마, 오이, 콩, 나팔꽃, 수세미, 여주, 능소화, 장미, 호박 등등.

생명이 있는 동식물을 하나하나 지켜보면 신비롭고 오묘하기만 하다. 텃밭을 가꾸며 살랑거리며 부는 바람에 코끝을 스치는 풀냄새와 밤꽃향기, 흙 내음에 취해 삼매경에 들다보면 마음에 평온을 찾곤 한다.

오이를 심어놓고 오이네 집을 멋지게 짓다보면 한나절이 기울고 여기저기 심어놓은 콩에게 줄을 매주며 놀다보면 해가 기운다.

텃밭에 풀 뽑고 북주고 거름을 주면 그 싱싱한 매력에 흠뻑 빠져 보람을 느낀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바구니 하나 가득 푸성귀를 제쳐서 닭도 주고 쓸 만한 것은 이웃들과 나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동녘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식물들과 찬미의 노래를 부르게 되고 늘여놓은 줄을 타고 콩 넝쿨은 묘기를 부린다. 농부의 참마음을 알 것 같다.

오이는 노랑꽃을 매달고 벌과 나비를 부르고 능소화는 은행나무에 의지하여 힘차게 꼭대기 까지 올라가고 있다. 울긋불긋 장미꽃은 담장을 넘어 골목길을 환하게 밝힌다.

뻐꾸기와 꾀꼬리 종달새 까지 저마다의 개성 넘치는 소리로 울어대면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싶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참으로 힘든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돈을 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이 안 가진 재주를 가져야 창의력 넘치는 사업체가 될 것만 같아서 이것저것을 익히려고 동분서주 열정 넘쳤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서울을 안방처럼 들락거리며 민간 자격증을 따러 다녔던 일들. 아내와 어미의 자리가 막중해서 곁눈질 한번 할 사이 없이 살다보니 머리에 서리 내린 가을 여인이 되어 버렸다.

일선에서 물러나 살림다운 살림을 이제야 하고 산다. 몸이 하자는 대로 자고 싶으면 자고 음악을 듣고 싶으면 듣고 어설픈 솜씨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도 불러보는 여유를 즐긴다.

닭장의 청계들도 내 손길에 자라 알을 낳고 병아리를 품어 개체수가 늘어나니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뿌듯함으로 가득하다.

문암 생태공원으로 산책을 가면 숲속 아동 문학회원들의 시화가 있어 반갑다. 음성과 청주 아동문학을 하는 선후배님들의 글을 접하며 벤취에 걸터앉아 전화를 거는 날도 있다.

늪지대에서 울어대는 맹꽁이와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를 듣다 보면 고향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다.

작가들이 만든 정원을 들락거리며 고사리 손으로 꽃모종을 하던 추억에 젖기도 하며 날아 오르는 백로와 산새들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인다.

신도시 개발지역이라 투기꾼들의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지어놓은 하우스와 창고가 여기저기 지어져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고 했다. 마치 정구지 크는 것과 같다고 한다. 베어 먹고 돌아서면 다시자라는 정구지.

법정스님은 비 피할 움막 하나면 족하다고 했다. 문밖을 나서 이웃을 만나면 누구는 뭘 해서 얼마를 벌었다고 자랑이 난무하다. 테크노 단지 흡입으로 보상을 받은 이주 딱지가 프레미엄이 일억이 붙어서 거부가 된 양 수다를 떨어댄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흥미롭지 못한 난 생명이 있는 수목들과 어울려 하루해를 보낸다. 온종일 울어대는 산새들과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황금 두꺼비를 보고 놀라운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두커니 골목길을 밝히는 가로등아래 자리를 펴고 밤하늘의 별과 달을 바라본다. 뒷동산에서 처량하게 울어대는 소쩍새의 "소쩍쿵"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오늘하루를 무탈하게 보낸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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