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김겸훈 충남양성평등위원·전 정책자문위원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대변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한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자본론의 저자 칼 마르크스로 우리 동양과 동양인에 대한 그의 지독한 편견과 아집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그의 저술이나 그에 관한 수많은 글을 읽으며 한 때나마 심취했었고 세상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곳으로 바꿀 방법을 상상하곤 했다. 그런 나로서는 이 구절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고 그에 대한 존경심은 눈 녹듯 사라졌다. 이런 씁쓸한 나의 경험이 다시 소환된 것은 최근 지역 언론의 보도내용 때문이다. 현 충남연구원장이 과거에 공안문제연구소에서 4년간이나 근무했던 이력이 공개된 것이다. 실망감과 함께 자괴감이 밀려왔다.

지금은 민선 7기다. 이 민선자치가 특별한 이유는 민주화 이후에도 청산하지 못했던 구태와 적폐를 일소하고 반듯한 민주주의를 꿈꾸며 평화롭고 아름답게 펼친 촛불시민혁명의 토대 위에서 출범했기 때문이다. 우리 충남이 이 시대의 핵심가치인 공정과 정의를 근간으로 더 행복한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거듭 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치행정의 제도나 관행 속에 숨어 있는 과거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논란의 본질은 경력은폐에 대한 사실 관계가 아니라 어떻게 논란의 여지가 명백해 보이는 그런 경력자를 굳이 충청남도 싱크탱크의 수장으로 임명하게 되었느냐다. 도민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관련 인사의 인사검증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졌을까? 2018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에 여론에 힘입어 일부 광역자치단체에서는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제도를 단체장과 지방의회 간의 협약이나 조례를 통해 도입하였다. 이런 흐름 속에서 충남도는 지사와 도의회 의장이 인사청문회에 합의하였는데 무슨 연유인지 도지사는 돌연 충남연구원장 만 콕 집어서 인사청문회 대상에서 제외시킨다. 도민의 대의기관이며 도정의 감독·견제기관인 도의회는 합의로 약속한 충남연구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을 실시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아주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고 이번 논란으로부터 도지사가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도지사는 이번 논란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선출직 공직자에게 주어지는 인사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투표를 통해 권한을 위임받은 도지사는 인사권을 포함하여 도정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 그 권한의 범주 내에서 행사된 인사권에 대해 누구도 개입할 수 없다. 다만 이 인사권은 풀뿌리민주주의의 장인 자치제도의 틀 안에서 도민의 뜻과 기대를 대리해 행사되어야 하고 어떤 이유로도 도민의 지혜를 통해 평가된 비판이나 문제제기를 압도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충남도는 산하단체의 일이라며 방관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관리주체이자 최종책임기관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해야한다.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도민에게 이런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여 제시해야 한다. 현재 충남도의 공공기관장 인사청문회제도는 법적 근거나 제도적 장치 없이 도지사와 도의회 의장 간의 협약 형식으로 운영되어 정상적인 검증시스템이 작동될 수 없었고 회피의 수단으로 악용된 경우다. 따라서 충남도는 광역지방자치단체 인사청문회의 위임근거가 될 상위 법령 제정을 국회에 요청하고 충남도 의회는 관련조례를 제정하여 인사검증시스템을 제도화 하여야 한다.

김겸훈 충남양성평등위원·전 정책자문위원
김겸훈 충남양성평등위원·전 정책자문위원

도민들은 대단한 인물을 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직무와 이해가 충돌할 때 도민의 편에서 사려 깊게 헤아리고 도민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며 양심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이런 인물이 등용될 수 있는 인사검증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그것이 도민을 더 행복하고,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굳건한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다. 아니면 소나 줄 거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