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여행] 기억으로 지은 건축, 베니스 세계극장
[건축여행] 기억으로 지은 건축, 베니스 세계극장
  • 중부매일
  • 승인 2021.06.2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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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베니스 세계극장
베니스 세계극장

1979년, 이탈리아 베니스 앞 바다에 이상한 건축물이 하나 뜬 적이 있었다. 그 건축물은 파란 지붕에 노란 몸통을 가진 성 모양을 하고 있었다. 뜬금없이 바다 위에 떠있는 성을 본 사람들은 현실에서 전혀 보지 못한 광경이라 모두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이 건축물은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었다. 이 건축물을 지은 사람은 이탈리아의 건축가 알도 로시였다. 알도 로시는 삶과 죽음을 깊게 고민하며 건축의 본질을 찾는 건축가였다. 그가 '어쩌다 시인이 된 건축가'라고도 불렸으니 얼마나 철학적으로 건축에 접근하는지 알 수 있다. 알도 로시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총감독을 맡게 되면서, 비엔날레를 상징할 건축물을 설계했다. 로시는 베니스의 상징이 무엇일까 생각을 했다. 그는 그저 눈에 잘 띄는 높고 거대한 건축물은 뻔해서 싫었다. 그래서 그는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연구했다. 그는 우선 베니스는 운하가 많아 사람들이 물 위에서 생활하니 물 위의 삶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면 어떨까 생각했다. 처음에 그는 물 위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등대를 생각했지만, 그것도 베니스를 상징하기에는 아주 부족했다. 생각만 잔뜩 하다가 답답함을 느낀 로시는 어느 날, 기분전환을 하러 연극을 관람하러 극장을 방문했다. 극장은 베네치아 세관이 보이는 곳 테라스에서 연극을 구경하다 보니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18세기에 유명했던 수상극장을 재현하면 어떨까 생각해냈다. 눈 앞에 있지만, 뭔가 손에 잡히지 않은 막연한 느낌의 극장이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운하 옆에 붙어있는 건물처럼 극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배 위에다가 극장 건물을 만들면 정말 의외의 공간이 만들어질 거라고 확신했다. 그곳에서 연극 관람을 하는 사람들은 파도때문에 아래위로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했다. 거기다가 관람객들이 뱃멀미까지 한다면 정말 웃긴 상황이 연출될 거라 생각하며 베니스 비엔날레 설계를 시작했다. 건축 이름을 베니스 세계극장(Teatro del Mondo)이라고 지었다. 로시는 이탈리아 로마의 포로로마노에 대한 어렴풋한 어린 시절 기억처럼 극장 안에서 창을 통해 보이는 베네치아의 풍경을 무대 배경의 일부로 만들고 싶어 했다. 로시는 베니스 세계극장을 안과 밖의 모호한 경계와 기억들로 버무려 마치 내가 다른 장소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장소성을 그의 건축언어로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베니스 세계극장은 겨우 가로세로 각 9.5m 정방형 구조에 높이 25m의 시계탑처럼 만든 작은 수상건축이지만, 현실적인 장소에서 비현실적인 건축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소환했고, 기억에 남을 만한 큰 건축이 되었다. 베니스 세계극장은 비엔날레가 끝나고 난 뒤, 철거되었지만, 훗날 이 건축물이 기억에 남아있던 사람들에 의해 다시 베니스 광장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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