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3막 연 장준식 국원문화재연구원 이사장
인생 3막 연 장준식 국원문화재연구원 이사장
  • 정구철 기자
  • 승인 2021.06.21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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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식 이사장<br>
장준식 이사장
장준식 이사장

[중부매일 정구철 기자]수십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정년퇴직을 한 사람들이 퇴직 후에 쉽게 늙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보게 된다. 사회의 일선에서 물러나는데 대한 허전함과 앞으로 펼쳐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정년이 임박한 사람들은 퇴직 후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만 우리사회는 나이든 사람들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한 편이다. 그런 면에서 칠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시 날개를 펴고 인생 3막을 여는 장준식(72) 국원문화재연구원 이사장은 아주 행복한 사람이다.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생활하는 '칠십대 청년' 장준식 이사장을 만나 그의 인생과 문화재에 대한 철학을 들어봤다. / 편집자

장준식 이사장은 '문화재계의 마당발'로 통한다.

문화재에 대한 그의 열정과 탁월한 지식만큼이나 문화재계에서 쌓은 인맥의 폭이 크기 때문이다.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은 많은 인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장 이사장은 혈기왕성한 학창시절에는 경찰관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누구나 그랬듯이 한때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친구들과 어울려 심하게 방황도 했다.

장 이사장은 "생각해 보면 인생 1막이라고 할 수 있는 학창시절은 분명 지그재그 형태의 길이었던 같다"며 "좌우를 거치다 보니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는 늦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스스로 굳게 다져진 면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관이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은 고고미술학을 전공한 대학에서 평생의 스승인 정영호 교수를 만나면서 180도로 바뀌게 된다.

정영호 교수의 투철한 교육관이나 고고한 인품은 그에게 커다란 산맥처럼 다가왔다.

대학에 입학한 뒤 첫 답사지인 법주사에서 정 교수로부터 쌍사자석등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문화재에 대한 중요성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같은 해 여름 사천의 패총 발굴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처음으로 유구와 유물을 접한 그는 수천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조상들에 대한 경외심과 신비감에 매료돼 평생 문화재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일에 종사하게 됐다.

이후 그는 끈기와 근성으로 각종 답사와 지표조사, 발굴현장 등을 빼놓지 않고 찾아 다녔으며 이같은 노력은 훗날 이론과 실제를 겸비하는데 큰 힘이 됐다.

대학 졸업 후 충주북여자중학교 역사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향토조사반을 만들어 주말이면 답사를 통해 학생들에게 지역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가르쳤다.

또 3년 동안 열심히 역사자료를 수집해 학교박물관을 설립했다.

1978년에는 향토사연구단체인 충주예성동호회를 창립했고 동호회 활동을 통해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고구려비인 '중원고구려비'를 발견했다.

국보 205호인 중원고구려비 발견이라는 쾌거를 통해 우리나라 5대 문화권의 하나인 중원문화권이 설정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는 충주 고구려비와 함께 제천 장락사와 충주 숭선사(崇善寺) 발굴을 가장 큰 보람으로 손꼽고 있다.

숭선사는 고려 광종 5년(954)에 왕이 어머니인 신명순성왕후(神明順成王后)를 위해 창건한 절로 여기서는 국내 최대의 금동풍탁과 금동제 연봉 장식, 초대형 지하 배수시설, 꿀과 자소성분의 액체가 든 분청사기 밀봉그릇 등 진귀한 문화재들이 줄줄이 발굴됐다. 숭선사지는 사적 445로 지정됐으며 지금까지 국비로 발굴과 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1983년 충청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1885년에 전국 전문대학 가운데 최초로 대학박물관을 설립해 30년 간 박물관장을 역임했다.

재직 당시 제천 월광사지를 비롯한 수십건의 지표조사와 충주 숭선사지를 포함한 많은 발굴조사, 충주 미륵리사지 종합정비기본계획 수립 등 여러 건의 학술조사를 시행해 우리나라 불교미술사 전문 연구기관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문화재청 전문위원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대학박물관협회 이사, 한국기와학회 회장, 충북도문화재감정관, 충북도 문화재위원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굵직한 문화재들을 발굴했다.

2007년 충주에 둥지를 튼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유치와 2024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국립충주박물관을 유치하는데도 그와 인연을 맺은 문화재계의 인맥들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한국대학박물관협회와 한국박물관협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박물관 맨'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대학에서 정년 퇴임하고 2014년 충북문화재연구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6년 동안 연구원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장 이사장은 "문화재 발굴과 보존을 위해 일해온 인생 2막은 오로지 앞만 보고 걸어온 직선 길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충북문화재연구원장을 퇴임한 뒤 충주시 주덕읍에 직접 (재)국원문화재연구원을 설립해 지난달 6일 문화재청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국원문화재연구원은 충북 도내에서 청주를 제외한 시·군지역 중 유일한 문화재연구원이다.

장 이사장으로서는 칠십이 넘은 나이에 인생 3막을 여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셈이다.

국원문화재연구원은 1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각각 4명씩 구성된 2개의 팀이 전국에 있는 각종 문화재의 지표조사와 시·발굴조사를 의뢰받아 수행하게 된다.

개원과 동시에 일제 때 반출돼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괴산 외사리 사지의 승탑을 환수하기 위해 괴산군으로부터 용역을 의뢰받아 수행하고 있는 등 다양한 지표조사와 시·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장 이사장이 이처럼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는 아내인 김경인(66) 씨의 격려와 지원이 가장 큰힘이 됐다.

그는 북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같은 한림학원 내 충주여자상업고등학교(현 한림디자인고)로 발령받은 신임 여교사 김 씨에게 반해 2년간 끈질긴 구애 끝에 1979년 결혼에 골인했다.

장 이사장의 아내 김경인 씨 역시 시인이자 무용가로 활동하면서 예총충주지부장을 역임하는 등 문화예술계의 마당발이다.

그에게 있어 아내는 문화예술을 함께 공유하는 동료이면서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 최고의 조언자다.

장 이사장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행운은 아내와의 만남"이라며 "결혼한지 42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아내와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장 이사장은 지난 2008년 충주시민대상을 수상했고 아내인 김 전 지부장 역시 2010년에 충주시민대상을 수상해 함께 충주시민대상을 받은 유일한 부부가 됐다.

또 2014년과 2017년에는 장 이사장과 김 전 지부장이 각각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부부로서 이같은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적지않은 나이지만 여전히 장 이사장은 발굴현장에서, 김 전 지부장은 공연장과 전시장에서 나이를 잊은 열정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장 이사장은 "내 인생에 있어 1막은 꾸불꾸불한 길이었고 2막은 앞뒤 돌아볼 겨를이 없는 직선 길이었다면 새로 시작되는 인생 3막은 좀 더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면서 "내가 선택한 인생 3막이 더욱 보람되도록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문화재 친화적사업을 전개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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