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인생서막

한 TV 인터뷰 프로그램에 대기업 출신 방송인이 출연했다. 그녀의 회사 시절 좌충우돌 스토리를 듣다보니 옛 생각이 났다. 필자 역시 그 회사 금융계열사 입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격증이라곤 태권도 단증과 운전면허증 밖에 없었던 필자가 어떻게 금융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미궁이다.

#인생 제1막 : 따뜻한 기억

입사한 회사는 "관리의"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비인간적 수준으로 관리에 철저하다는 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직원의 연수를 통한 인적 자원 관리에도 큰 공을 들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의 비지니스 매너나 소통의 기술은 회사생활을 하며 배운 것이 대부분이었다. 퇴사한지 십수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그 배움의 덕을 보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었다고 하니 누군가는 필자의 회사생활이 엘리트의 꽃길이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인생2막을 살고 있는 지금 회사시절을 돌이켜 보면 눈앞이 아찔하다. 일 욕심이 많아 일을 열심히 하긴 하였으나 회사원이 칠 수 있는 사고란 사고는 모조리 쳤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루는 그룹 컨트롤 타워의 임원이 회사에 온 적이 있었다. 당시 필자의 회사 커리어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고위직 임원이었다. 업무 후 회식을 하는데 필자가 흥을 참지 못하고 분말 소화기를 터트렸다. 그 임원은 고약한 냄세나는 소화기 약품을 몽땅 뒤집어썼고 자리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회사는 발칵 뒤집어 졌다.

너무 어이없는 사고여서 일까? 아니면 그간의 공을 인정받은 덕분일까? 당시 팀장과 최대 피해자인 임원이 웃고 지나갔기 망정이지 어쩌면 타의에 의해 인생2막을 시작하여야 했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조용히 무마되었다. 오히려 자기계발을 하도록 수개월간 업무에서 해방되어 맘껏 법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읭?). 그 기회를 통해 인생 제2막을 시작할 밑천을 마련하였다.

#인생 제2막 : 낭만고양이

운이 좋았다. 누군가는 인생의 단맛쓴맛을 다보는 첫 사회생활이었겠지만 필자에게 인생 제1막의 회사는 참 따뜻했던 기억이다. 황당한 사고를 쳐도 웃음으로 넘겨주고, 수개월간 업무에서 해방되어 자기 계발할 기회를 몇 번이나 받았으니 이런 꿀같은 회사생활이 어디 있겠나. 그럼에도 회사를 그만두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회사에서 마지막 회식을 하면서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를 목청껏 불렀다. "이젠 바다로 떠날거에요. 거미로 그물 쳐서 물고기 잡으러! 나는 낭만고양이~ 슬픈 도시를 비춰 춤추는 작은 별빛~". 하지만 인생2막을 향한 낭만이 밥을 먹여주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변호사가 되었다. 목표를 이뤘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회사를 먼저 떠난 선배가 창업을 위해 퇴사하고자 하는 후배에게 하는 충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회사 밖은 지옥처럼 외로웠기 때문이다. '낭만고양이' 노랫말처럼 슬픈 도시 속에 작은 별빛으로 남은 느낌이다. 외로운 낭만고양이.

#돌이켜보니

회사시절 황당한 사고를 웃음으로 승화시켜줬던 (지금은 형이라고 편하게 부를 수 있게 된!) 팀장님, 업무에 좌절할 때 "넌 최고"라며 응원해 줬던 선배, 인생 제2막을 시작할 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남도 사투리를 빌어가며 "귄하다"며 칭찬해 주던 상무님. 참 따뜻했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변호사

회사 밖 외로움의 실체는 따뜻했던 동료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밖이 지옥이라면 그 때 그 동료들 없이 홀로 책임져야 하는 외로움의 지옥일 것이다. 회사라는 전쟁터를 함께 달린 동료들과의 전우애가 그립다. 우리 로펌을 돌아본다. 로펌 구성원들 대부분은 인생 제1막을 살고 있는 어린 친구들이다. 나의 인생 제1막의 동료들이 내게 주었던 따스함을 이제 내가 그들에게 돌려줄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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