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상산자석벼루의 현 주소와 과제
진천 상산자석벼루의 현 주소와 과제
  • 송창희 기자
  • 승인 2021.06.24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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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전통'의 가치를 일깨우는 '오래된 미래'

[중부매일 송창희 기자] 조선시대 최고의 벼루로 명성을 날린 '진천 상산자석벼루(常山紫石硯)'. 상산(常山)은 진천의 옛 지명이며 초평면 두타산 일대의 암석이 붉은 색을 띠고 있어 자석(紫石)이라 불렸다. 이 돌은 두타산성과 농다리를 축조한 돌이기도 하다. 이 상산자석벼루의 역사성과 지역성에 대한 가치를 이해하고, 긴 세월 홀로 제작기술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권혁수 명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붉은 돌, 붉은 마음 상산자석벼루' 기획초대전이 진천종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어 상산자석벼루의 문화재적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상주인구 9만을 돌파하며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진천군의 역사문화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진천 상산자석벼루의 오늘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지역'과 '전통'은 진천이 지켜내야 할 '오래된 미래'임을 일깨우고 있다. / 편집자

약천 남구만 등 예찬 이어져

권혁수_잠자리벼루

우리나라에서 기능과 형태를 갖춘 벼루가 나타난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다. 삼국시대에는 흙을 구워 만든 토제벼루와 유약을 발라 구운 도제벼루가 사용 되었는데 현존하는 출토품을 통해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지역성을 반영한 독자적인 양식의 벼루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돌로 만든 벼루가 점차 증가해 주류를 이루게 된다. 고려시대의 출토연(出土硯)과 진천을 뜻하는 '상산(常山)'이라는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을 볼 때 진천 상산자석벼루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조선시대 서화의 흥행은 자석벼루의 유행을 가져왔고, 궁중의 각종 연회 선물과 대외적으로 중국 명나라와 일본의 사신들에게 선물하는 특별한 물품 중의 하나였다.

권혁수_용무늬벼루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 재 너머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라는 시조로 유명한 약천 남구만(1629~1711)은 진천 상산자석벼루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그는 1723년 간행된 '약천집(藥泉集)'에 '진천두타산자석연, 소이심가(鎭川頭陀山紫石硯, 小而甚佳)'라는 시를 실어 "글씨를 쓰면 먹빛이 구름 같아 붉은 빛을 발산한다"고 예찬했다.

또 글 끝에 '한생(석봉 한호·1543~1605)이 진천에서 나온 돌로 만든 벼루를 가지고 궁중에 들어가 임금의 호평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가였던 한호가 진천 자석벼루를 썼다는 것은 그 시대에 상산자석벼루가 널리 애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진천 농다리 등 향토성 가미

권혁수 기획초대전
권혁수 기획초대전

상산자석벼루는 1900년 전후까지 진천의 특산품으로 중요하게 취급됐으나 일제강점기를 맞아 급격한 쇠퇴를 맞게 된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두타산 자락 공방에서 상산벼루의 제작기반을 다시 마련하기 위해 설립된 진천석기조합 소속의 김인수(1908~1972·1대 전승자)씨와 그를 이은 유길훈(1949~·2대 전승자)씨에 의해 명맥이 이어졌다. 유 씨는 2000년까지 진천에서 활동하다 2001년 울산으로 이주했으며, 2017년 울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됐다.

현재 상산자석벼루는 이들을 계승한 권혁수(1959~·3대 전승자) 씨에 의해 명품 벼루로서의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2018년 충북 제12호 공예명인으로 지정된 그는 전통적인 형태와 문양을 계승하면서도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사신도와 진천 농다리 등 향토성 짙은 문양을 벼루에 새겨 넣으며 역사성, 기술성, 예술성을 갖춘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확장해 가고 있다.
 

진천군 지난해 학술조사 실시

특히 오는 7월 25일까지 열리는 이번 기획초대전에는 권 명인의 작품 40여점과 그의 손때 묻은 제작도구 30여종이 전시되고 있어 작품 속에 배어있는 장인정신과 노력을 엿보게 한다.

권 명인은 스승에게 처음 배운 것이 용안이어서 특별히 애착이 간다는 '용무늬 벼루'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잠자리, 봉황, 소나무, 대나무, 꽃, 새, 목탁벼루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몰입하고 있는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의 고구려 벽화 '사신도 벼루'는 올해까지 완성해 낼 자신만의 작품이다.

그는 앞으로 자신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체계적인 교육방식을 구축해 일반시민과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진천군은 지난해 충북도문화재연구원과 상산자석벼루 학술조사 연구를 실시하고 벼루의 맥을 잇기 위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충북도문화재연구원은 학술조사 보고회에서 "상산자석벼루의 역사성과 지역성에 대한 가치가 충분하다"며 "그 우수성과 지역특산물으로서의 가치를 홍보할 수 있는 전시관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진천군의회도 권 명인의 충북도 무형문화재 지정과 자석벼루를 홍보하고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 또는 전수관 건립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진천(권혁수 벼루장)·증평(유필무 필장)·괴산(안치용 한지장)·음성(한상묵 먹장)이 진행하고 있는 '중부4군 문방사우 장인 프로젝트'이 더 활성화돼 천년을 넘게 이어져 오고있는 문방사우의 역사와 가치를 널리 알려야 한다. 현재 증평군은 이에 대한 적극적인 행보를 시작해 문방사우 공원이나 테마길, 행복교육지구 연계 체험 프로그램 등을 구상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지역 문화예술 발전은 물론 인접한 자치단체가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공유도시 문화예술정책의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유산은 역사이자 미래다. 진천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일구며, 현재를 통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위대한 자산이다. 또한 안으로는 지역 주민들을 결속시키고, 밖으로는 관광객을 모을 수 있는 글로컬문화콘텐츠다. 상산자석벼루가 그 찬란한 빛을 발하길 기대해 본다.

[인터뷰] 권혁수 '진천 상산자석벼루' 전승자

"그래도, 그래도 하며 걸어온 세월… 후회는 없어"
 

권혁수 상산자석벼루 전승자

"역사적으로 유명한 돌인데 이게 사장되면 안된다, 이 돌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그래도, 그래도 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진천 상산자석벼루'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40여년간 묵묵히 걸어오고 있는 권혁수(62) 명인. 그는 명돌을 찾고 섬세한 손질로 돌을 수천번 어루만지며 전통방식 그대로 벼루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의 벼루제작은 '원석 채취 → 벼루 제작 형태 구상 → 밑면 다듬기·옆면 자르기 → 바닥의 형태를 고려해 윗면 다듬기 → 밑그림 그리기 → 바닥·물집 파기 → 연마하기 → 조각하기 → 칠하기'의 과정을 거친다.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은 벼루의 크기와 형태, 문양에 따라 달라지지만 하나의 벼루가 탄생되기까지는 1~2개월이 소요된다.

되돌아 보면 생업이 되지않고 알아주는 이도 없는 지난한 세월이었지만, 지금도 마음에 드는 돌을 만나면 빨리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에 아침이 기다려지는 열정과 설렘을 안고 산다.

1959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978년 진천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삼촌의 권유로 유길훈 선생에게 벼루 제작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1984년 제1회 올림픽 기념품 전시회에 바둑알집을 출품해 입선했고, 1985년에는 장식용 병풍을 출품해 입선하며 기량을 닦았다.

그러나 사양길에 들어선 국내 벼루시장의 불황과 생계문제로 다른 일에 종사했고, 유길훈 씨가 울산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접한 2001년 다시 진천만의 명품 벼루를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 이후 진천군 공예품 경진대회, 관광공예상품 공모전 등에서 다수 입상 했으며, 2010년 진천종박물관 초대작가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권 명인은 자신이 3대 전승자로 묵묵히 벼루 제작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은 미용실을 운영하며 헌신적인 내조를 해 준 아내 덕분이라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진천군 문백면 사양2길 46 '상산자석벼루 석진공방'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아직도 가는 중이다. 이 길이 내 자부심이자 사명감"이라며 상산자석벼루의 맥이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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