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교회 안에 집 짓고 산 지 11년이 지났다. 처음에 우아하고 멋지게 보이던 지중해식 건물이 점점 더 빛이 바랬다. 벽에도 빗물이 흘러내려 시꺼먼 자국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뒤뜰과 거실 앞에 설치했던 나무 데크가 부분적으로 썩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부서져 나간다. 작년 가을부터 다시 설치하려 했으나 비용이 만만치 않아 보류했다. 드디어 뉴욕 사는 외손녀가 2년 반 만에 우리 집을 방문하는 6월 중순을 기회로 그전까지 마치기로 하고, 두어 주 동안 데크를 수리하기로 했다. 다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부분적으로 수리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 기존 데크를 적당히 손보고 그 위에 다시 설치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했다. 그 대신, 처음보다 면적을 다소 줄였다. 이층과 침실 앞 발코니 방수작업도 다시 해서 빗물이 새는 것을 막았다. 빗물이 흘러 시꺼먼 얼룩 때문에 지저분하게 보이던 벽면에 페인트칠도 다시 했다. 몇 달 전 지붕의 기와 수리까지 마친바 있으니, 이로써 집이 깨끗하게 단장되었다. 비용은 꽤 들었지만, 마음이 상쾌해졌다. 모처럼 외가를 찾은 외손녀가 수리한 뒤뜰 데크 위의 간이 수영장과 그네, 그리고 해먹(hammock) 위에서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여간 기쁘지 않다. 완전히 새집처럼 바뀌지는 않았지만, 부서진 부분을 고치고 단장하니, 처음 들어와서 살기 시작할 때에 버금가는 느낌이다.

어느덧 올해도 반년이 지났다. 코로나 2년 차로 인해 많은 이들의 삶이 팍팍하고, 나 역시 불편하고 힘든 것이 많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럭저럭 잘 지내와 감사하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니, 아내나 가까운 친구들과 가급적 자연을 벗삼아 심신을 가꾸며, 내게 주어진 섬김의 도리를 다하려는 마음으로 살아보려고 했다. 다소의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새해 마음먹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니 제대로 한 것이 많지 않다. 그냥 시간만 보낸 것 같다. 눈앞의 삶에만 매달려 먼 곳과 큰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작은 것에 천착해 살아온 남루한 모습이 보인다.

늘어지는 피부, 주체할 수 없는 흰 머리칼, 깊어진 팔자주름이 지나간 60여 년의 삶을 덧없게 느끼게 한다. 하루 만 보 이상 걷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걸어서 출근하던 모습도 사라졌다. 성경과도 멀어졌다. 기도도 잘되지 않는다. 느슨해진 신앙생활 뿐 아니다. 법률섬김이로서 의뢰인의 법적 이익을 지키고 돕겠다는 투철한 소명의식도 많이 약화된 것 같다. 25년 차 변호사로서 선임자다운 성실한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고 매일 끙끙대며 사는 것 같다.

수리(修理)가 필요하다. 내 집을 수리하는 것같이 내 삶의 수리가 필요하다. 새로워져야 한다. '日新又日新' 옛 어른들의 말씀이 전혀 생경하지 않다. 새로 시작하는 후반기, 마음의 밭을 갈아야 한다. 낡은 것들을 들어내야 한다. 잘라내야 한다. 새로운 것으로 보완해야 한다. 보수해야 한다. 맘속에 들어 있는 편해지려는 마음을 걷어내야 한다. 쉬운 것만 하려는 나태함을 도려내야 한다. 의(義)에 어긋나는 마음, 행동을 털어내야 한다. 내가 살아 있음이 세상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내가 가진 것으로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감히 원기소(energizer) 같은 존재가 되어, 내 얼굴 하나만으로도, 내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내 이름 하나만으로도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며 살고 있으나, 새로워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성경은 교훈한다. "여러분은 옛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현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서, 지식에 이르게 합니다"(골로새서 3:9~10) 라고.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지난 반년, 힘든 가운데서도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살려져 왔음에 감사하자. 지난 반년의 삶을 돌아보아 부서진 부분을 보수해서 새롭게 후반기를 시작하자. 시절은 아직 고단하지만, 우리 각자 자신의 삶을 수리해서 새롭게 나아가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세상이 새로워지고 살맛 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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