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자갈이 깔린 물 위에 우뚝 서 있는 물 펌프가 시선을 끈다. 입구는 구부러져 있고 손잡이는 완만한 곡선을 유지한 채 세워져 있다. 마중물을 집어넣던 입구에는 분홍색 꽃과 초록 식물을 심어 놓아 조화롭다.

카페 터무니가 궁금했었다. 폐가를 개조하여 만드는데 지역민들 삶의 손때가 묻어있는 물건들을 고스란히 살려서 지었다고 했다. 문화 재생 공동체 사업의 일환으로 갔다가 흠뻑 빠져들었다. 손잡이를 누르지 않아도 펌프 입구에서 물이 흘러 반으로 쪼갠 대나무를 돌고 돌아 나오게 했다. 지금은 카페에서 장식용으로 있지만, 그 옛날 어느 가족과 함께했던 우물을 지키는 파수꾼이었을 테다. 삶의 공간이었던 주인에게는 소중한 존재였겠지. 어릴 적 시골집도 그랬다.

장독대 옆 샘터에 펌프가 있었다. 물가 옆으로 포도 넝쿨이 있고 살구나무도 있었다. 샘터 한쪽을 지키고 있던 물 펌프. 몇 십분만 쓰지 않으면 물이 빠진다. 물 한 바가지 넣고 누르다 보면 처음에는 삐거덕 거리다가 신나게 물줄기를 뿜어 올려 물이 콸콸 나왔었다. 처음 올라 온 물은 흙물이지만, 물을 더 부으며 계속 펌프질을 하면 맑은 물이 쏟아진다. 지하에 있는 물을 끌어 올리려고 펌프에 넣은 물 한 바가지를 마중물이라고 한다. 깊은 물을 마중하러 나가는 물, 마중물. 부를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물을 쓰다가도 마중물은 항상 챙겨 놓아야 했다.

상추는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자주 주어야 연하고 맛있다. 마당 한쪽 심어 놓은 채소에 물주는 것은 주로 아이들의 몫이었으니, 손빨래한다거나 남새밭에 물이라도 주느라 한참을 물 펌프질 하다 보면 팔은 얼얼해지고 몸은 후끈거렸다.

진종일 밭일하고 오신 아버지. 샘가에서 팔을 집고 엎드린 아버지의 등에 물을 부어드린다. 펌프해서 올린 물이라 차가울 만도 한데 시원해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내 옷이 젖어도 흐뭇했었다. 물이 고인 검정 고무신은 댓돌에 엎어서 세워 놓았다. 함지박에 물을 받아 놓으면 한낮 뜨거운 햇볕에 물은 덥혀지고 어머니는 그 물로 밭일의 고단한 몸을 씻으셨다. 펌프 물은 여름이면 시원하게 느껴졌고, 겨울이면 기온보다 수온이 따뜻하게 느껴졌던 그 때.

내 삶에 있어서 마중물은 무엇일까. 자식 일이라면 어떤 수고라도 감수하는 부모님이 아닐까. 흙물이 나서 첫물로 버려지는 마중물이지만 깊숙이 있는 물을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한다. 나 역시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흙물이어도 상관이 없다. 제 힘으론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땅속 깊이 숨어있는 곳으로 마중 나가 지하수를 퍼 올려 쓰임새 있게 하는 마중물. 큰일을 하는 원동력이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교수 직함을 가지고 있는 터무니 주인장도 공동체 사업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일 테다. 삶의 소중한 기억이 문화가 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문화 체험 스테이도 한다. 나 역시 마을공동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내 자식에게 화수분이 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지역 주민들과의 상생을 위해서다. 세상과 소통하게 역할을 하는 마중물. 누구나 마중물이 되도록 노력하다 보면 살맛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나눔이 많을수록 넘쳐나는 화수분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