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노근호 충북과학기술혁신원장

'비슷하면 지는 거다'는 문영미 하버드대 경영대 교수가 펴낸 책, '디퍼런트(Different)'에서 동일함이 지배하는 시장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세상 경영법을 설명하는 소제목이다. 많은 기업이 차별화를 외치고 있지만, 실상은 경쟁할수록 제품들이 유사해진다고 주장한다.

특정 카테고리가 성숙할수록 그 범주 안의 브랜드와 제품이 늘고 제품 간 차이는 좁아진다. 아주 열성적인 소비자 외에는 차별화를 실감할 수 없게 돼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진화의 역설'을 거치면서 기업경쟁력은 계속 약화한다고 경고한다. 더욱더 치열하게 경쟁할수록 기업들은 차별화에서 멀어지고 닮아가면서 자기 파괴적 악순환을 거듭하는 까닭이다. '차별화는 전술이 아니다. 일회성 광고 캠페인도 아니다. 진정한 차별화란 새로운 생각의 틀이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다'라고 강조한다.

'디퍼런트'는 2011년에 출판됐다. 그때는 2000년대 후반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파급되면서 큰 혼란을 겪은 직후였다. 1929년 경제 대공황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문 교수는 풍요의 시대가 저무는 것을 목격하면서 향후 비즈니스 세계가 추구해야 할 '다름'을 살펴야 한다는 절실함에서 책을 썼다고 피력했다. 새삼 이 책에 눈길이 가는 것은 그 상황과 지금이 비슷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인류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말 국내 한 경제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지정학적 팬데믹(9·11테러), 금융 팬데믹(글로벌 금융위기), 생물학적 팬데믹(코로나19 사태)에 이어 생태학적 팬데믹(기후 위기)이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 시대정신은 '거대한 창의적 파괴의 시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창의적 파괴'란 급속한 디지털 혁신을 의미한다.

팬데믹 1년은 디지털화 5년을 앞당길 것이라는 예측대로 국내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플랫폼 기업 카카오, 네이버가 코스피 시가총액 3, 4위에 등극했다. 인터넷 은행들이 직원 채용을 늘리는 반면 전통의 시중은행들은 인원 감축에 나설 계획이다. 유통업계의 온·오프라인 경계가 무너지면서 유통업계가 대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온라인 배달시장 규모가 오프라인 외식시장을 넘어서면서 속도전이 거세다.

정부가 발 빠르게 나섰다. 얼마 전 기획재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취약해진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2021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각국 간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서다. 또한 각 지자체는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경제·사회 구조 전환과 기후 위기 등 정책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역 맞춤형 미래 20년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경제주체들이 점점 '차별화의 대가'가 아니라 '모방의 대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지적을 되새기는 일이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한국에 일류대학이 없는 이유가 교수·학생·국민 모두 일류의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다른 나라 대학과 차별화된 연구를 위해 남을 모방하지 말아야 하며, 세상에 없는 문제를 찾아 연구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따라오게 해야 세계 일류대학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문영미 교수와 생각의 결이 같다.

노근호 청주대학교 산학취창업본부장
노근호 충북과학기술혁신원장

무엇보다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차별화가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도식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각국 및 지역 간, 기업 간 경쟁할수록 비슷해진 사례들을 눈여겨봐야 한다. 새로운 생각의 틀에 맞는 가치를 실천해야 한다. '넘버원(No.1)'을 넘어 '온리원(Only One)'이 되라는 문 교수의 경구를 새겨야 할 때다. 너무 익숙해지면 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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