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나는 요즘 논어의 숲에 빠져있다. 그 짙은 향기에 취해 멍하니 생각에 잠기다가 힐끗 미소를 짓기도 한다. 왜 논어를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하는지를 이제야 알겠다. 논어는 유교의 뿌리인데 유교 하면 왠지 꼰대 같고 시대에 뒤떨어진 듯하다. 하여 나는 학생들 가르칠 만큼만 알면 되겠지 하고 뒤로 미루어 놓았었다. 그런데 논어를 공부하고 나서는 매우 후회했다. 좀 더 일찍 공부했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기 때문에 고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논어, 불경, 성경의 말씀이 다 그렇다. 논어는 중국 춘추시대에 살았던 공자의 어록이다. 제자나 제후 등이 한 말도 기록되어 있다. 모두 20편으로 되어 있는데, 글자 수가 1만 5천917자라고 한다. 문장은 498장인데 어떤 학자는 499장이라고도 한다. 이는 편집자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논어에서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는 인이다. 인은 학자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109번이 나온다.

그렇다면 그다음 키워드인 군자는 몇 번 나올까? 107번 나온다. 이는 학자 간에 이견이 없다. 나는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성미라서 확인하기로 했다. 군자가 나오는 문장을 모두 공책에 옮겨 적었다. 그리고 숫자를 매기며 세어보았다. 와, 정말 정확히 107번이다. 처음 학이편부터 끝인 요왈편까지 줄기차게 나온다. 군자라는 말이 나오면 일단 눈이 커진다. 왜냐하면, 그만큼 의미가 깊기 때문이다. '군자불기'처럼 아주 짧은 한마디로 폐부를 찌르는가 하면, 긴 문장으로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중 '군자삼변'이라는 말이 논어 끝자락인 자장편 9장에 나온다. 정확하게는 군자유삼변(君子有三變)이다. 군자는 세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바라보면 의젓하고(儼然), 다가가면 따뜻하고(溫), 그 말을 들어보면 명확하다(厲)는 뜻이다. 달리 해석하면, 이 세 가지 모습이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뜻도 된다. 제자인 자하가 스승인 공자의 모습을 이렇게 말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 군자삼변이야말로 공자가 말한 이상적 인간형의 집약이라고 본다. 여기에 사람의 참모습인 군자의 함의가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학교에서 군자삼변 인재를 찾기로 했다. 학생자치회에 맡겨 이달의 멋진 학생, 따뜻한 학생, 실력있는 학생을 선정하여 증서를 주고 격려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학년말에는 이 세 모습이 두루 잘 드러나는 1명을 선정해 창의융합 인재로 삼기로 했다. 이름하여 왕중왕 군자 선발이다.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논어를 공부하면 무엇하는가. 실천에 옮겨야 진정한 배움이 아니겠는가. 내친김에 군자를 소재로 하여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편씩 쓰는데, 온통 머릿속에는 군자가 꿈틀거린다. 그것은 즐거운 번뇌의 불꽃이다. 이놈이 활활 타오르다가 꺼지면서 한 줌 글이 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옛 성인의 말씀에 비추어 나를 살피는 일이라서 한편 조심스럽다. 논어의 숲은 향기롭다. 시공을 뛰어넘어 사람의 참모습이 보인다. 그것은 군자의 세 가지 모습이다. 아, 나는 어느 세월에 군자 삼변을 갖추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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