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 잔]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얼마 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의 저자인 혜민스님 이야기로 시끄러운 적이 있었는데,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의 반대 개념으로 차용된 '풀 소유' 논란이 그것이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는 다르게 고급 승용차에 고가의 부동산 소유 등으로 많은 분들이 실망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책 제목 하나만큼은 정말 기가 막히게 정했다고 인정하게 된다.

필자는 최근 수십 년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지만 복합문화공간 운영, 라디오 고정 출연, 비틀스 전시회 준비, 포크음악계의 이단아라고 평가받는 가수 양평 집 콘서트 추진, 유튜브 방송 진행 등으로 전혀 퇴사한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라면 회사에 출근하는 대신 복합문화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정도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많은 시간 동안 열정적인 내용의 문장들에 이끌렸었는데, 어쩐지 요즘 들어서는 '잘 하려면 힘을 빼야 한다'든지 '더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같은 말들에 더 마음이 가게 되었다. 짐작하시겠지만 지친 것이다.

그런데다가 어렵게 기획했던 콘서트도 코로나 단계가 격상되면서 주변의 걱정은 늘어만 갔다. '이런 시국에 무슨 콘서트냐', '분명히 사람들에게서 말이 나올 것이다' 같은 조언이었다. 이미 포스터도 나왔고, 음향도 맞추어 놓았고, 많은 분들의 관심도 있었지만 결국 후일을 도모하게 됐다.

문화공간이 추구하는 공연, 강연, 전시, 답사, 역사기행 같은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몇 날을 고민하던 끝에 몇 가지 일을 잠시 멈추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는 하루가 지났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 순식간에 몇 가지가 떠올랐다.

첫 번째, '알람 소리에 깨지 않고 눈 떠질 때까지 잠자기', 두 번째, '밤에 잠이 오지 않는데 내일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하지 않고, 졸릴 때까지 밤이 주는 정취 즐기기', 세 번째, '점심 천천히 여유롭게 먹기' 같은 것들이었다.

이 밖에도 목적지나 기간을 정하지 않고 훌쩍 여행 떠나기, 평소 가고 샆던 도시에 가서 한 달 동안 살아보기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놀라운 건 우선 떠오른 세가지는 사실은 마음만 먹으면 아무런 대가 없이 즉시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어제 점심에는 15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3년 동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서 현재는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그 친구는 '지나고 나니 시험공부를 했던 그 3년간이, 살아온 날들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말을 했다. 합격해야 한다는 부담은 있었겠지만, 주어진 시간을 본인 의지로 자유롭게 설계, 운용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의 삶은 뛰든, 걷든, 잠시 멈추든 정해진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 최선을 다해 달려서 더 먼 곳까지 가기 위한 게임이 아니다. 지금은 천천히 가더라도 내가 지나가는 길목의 풍경을 자세히 보고 싶다. 그러다가 다시 달리고 싶어지면, 그때 달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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