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2019년 한국 가구당 소득은 5천920만 원이다. 같은 해 가구당 부채는 8천250만 원으로 2018년보다 4.4% 늘었다, 이 가운데 평균 금융부채(담보, 신용, 신용카드 대출 등)가 6천50만 원을 차지했고 이 역시 2018년보다 5.1% 늘었다. 가장 많은 빚을 진 지역은 서울(1억1천만 원)이고 세종(1억790만 원)이 뒤를 이었다. 가구 전체 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18.5%로 2018년보다 0.2%p 늘었다. 저축액 대비 금융 부채비율도 6.2%p 증가했다. 수도권 지역 40대 미만의 부채증가율이 12.2%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2020 가계금융복지조사·통계청. 한국은행).

부채비율 증가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축약어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출을 받아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행위, 빚내서 투자한다는 '빚투'의 다른 표현)이 중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영끌의 횡행은 특히 40대 사이에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이때 아니면 집을 마련할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소득보다 부채가 많다는 것은 살림살이가 녹록지 않다는 증거다. 그러나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않는다. 많은 사람은 일단 빚을 내서라도 임시방편으로 궁핍한 생활을 면한다. 바로 금융권이나 사채의 문턱을 넘는다. 가불(假拂) 인생의 서막이다.

돈을 쥔 금융권, 은행 등에 채무자가 되면 을(乙)이 된다. 은행은 이자나 원금을 하루라도 상환을 지연하면 독촉한다. 더욱이 상환을 장기간 지체하거나 거부하면 신용등급 강하 등으로 금융거래를 어렵게 하거나(신용불량자) 감당할 수 없는 폭리 폭탄을 투하한다. 채무자는 은행, 돈의 노예가 된다.

왜 인간은 돈의 노예가 되었을까? 고대 그리스 시대 아테네에서 돈을 취급하는 사람들이 노예였다는 사실을 알면 그 이유를 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시 노예는 이른바 '해방된 자유 노예'로 국가나 공동체에서 배제된 무리다. 하지만 이들은 교역 등 자유로운 경제활동은 물론 어떠한 것도 소유할 수 있었다.

이들은 국가나 지배계급 공동체와 같은 공간에 살았지만, 생활 문화는 전혀 달라 외부인으로 취급되었다. 추방자, 망명자, 유민, 범죄자, 도망 노예, 포로 등의 무리와 같았다. 자유 노예는 이들 무리와 어울리며 주로 다른 나라나 도시와의 교역에 종사했다. 교역 중 두드러진 직업은 환전상과 고리 대금업이었다. 현재 금융업의 원시 형태였다.

자유 노예와 돈 취급과의 관련은 'Bank(은행)'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일어 'Bank'는 벤치. 긴 의자. 작업대. 판매대, 은행, 판돈을 뜻한다. 벤치와 은행 그리고 판돈의 뜻을 혼합해 설명해 보면, 사람이 벤치나 의자에 앉아 판돈을 놓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준다는 그림이 그려진다. 벤치에 앉아 돈을 빌려준 주인공이 바로 자유 노예였다. 그들은 다른 무리와 달리 자유인이어서 교역을 통해 합법적으로 돈을 많이 축적할 수 있어 이른바 돈놀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돈을 쥔 자여서 금전 관계에서 갑(甲)일 수 있지만, 당시는 그러하지 못했다. 해방된 노예라 해도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이어서 채권자로서 갑(甲)적 권력이 없었다. 돈을 빌려주면서도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경멸적 시선 등으로 한 곳에서 장기적으로 환전과 고리대금업을 지속하기도 어려웠다(The Livelihood of man:karl Polanyi).

노예가 현재의 금융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공자 사상과 비유하자면 '이로움, 잇속에 밝은 소인(小人喩於利)'으로 '자유 노예'를 취급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군자(군자는 의로움에 밝다:君子喩於義)이고, 자유 노예는 소인이라고나 할까? '뭐니 뭐니해도 머니(Money)가 최고'란 시쳇말이 이젠 속담이 되었다. 돈의 노예화를 반증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돈은 경제적 물질적 이득의 수단은 물론 사회관계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본주의(신자유주의)가 첨예화되면서 전자에 방점이 찍히고 있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고대 그리스 시대 자유 노예가 돈을 취급했다. 현재의 돈은 태생적으로 노예의 유전인자를 지닌 셈이다. 은행의 원조는 그리스 시대 '자유 노예의 무리'라 해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 은행,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됐고, 인간은 빚에 절절매는 '부채(負債) 인간'이 됐다. 니체는 죄의 원인을 부채라 했다. 부채의 굴레를 벗겨주는 것이 국가나 공동체의 임무지만 대한민국은 이를 실행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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