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금같은 銅 획득한 반전의 검객
"내년 아시안 게임 기대해달라"

지난 2일 본가가 있는 충북 청주를 찾은 도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권영준. /신동빈
지난 2일 본가가 있는 충북 청주를 찾은 도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권영준. /신동빈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무디다' 스스로를 수없이 자책했던 그의 검(檢)끝은 독이 바짝 올라 있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맏형은 자신의 도쿄올림픽 마지막 경기, 마지막 라운드에서 사정없이 중국팀의 심장부를 찔렀다.

지난달 30일 일본 지바 마하쿠리 메세에서 열린 남자 에페 단체전 경기에서 펜싱 역사가 새롭게 쓰였다. 권영준(34·익산시청), 박상영(26·울산시청), 마세건(27·부산시청), 송재호(31·화성시청)가 동메달을 따내며 대한민국 에페 첫 메달이라는 기록을 새겼다.

중국과의 동메달 결정전. 팀 전체가 흔들리며 끌려가던 경기의 반전을 만든 건 청주에서 나고 자란 권영준이었다. 스위스와의 8강전,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제몫을 다하지 못했던 그의 간절함은 순식간에 경기를 뒤집어 놨다.

총 9라운드 중 8번째 라운드에 나선 권영준은 3점(29대 32) 뒤진 채 경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3분 후, 전광판 점수는 34대 34 동점을 가리켰다.

"앞선 경기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팀원들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선수인생 마지막 경기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피스트(펜싱경기장)에 섰습니다. 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공격밖에 없었고, 온힘을 다해 내지른 검이 좋은 결과를 낸 것 같습니다."

8라운드가 끝나고 모두가 권영준의 투혼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피스트를 내려오며 눈물을 흘렸다. 한 점 더 따지 못했다는 자책, 마지막 승부의 부담을 온전히 짊어진 박상영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항상 마지막을 떠 앉는 상영이에게 좀 더 편한 상황을 만들어주지 못해 형으로서 죄스러웠습니다."

피스트에서 내려온 권영준은 수건을 뒤집어쓰고 소리로만 경기를 들었다. 우리 팀의 함성소리가 나면서 경기가 우세하게 흘러간다는 것은 느꼈지만, 차마 박상영의 경기모습과 전광판 점수판을 볼 수 없었다.

"눈물이 계속 흘러서 수건을 덮어쓰고 소리만 들었어요. 그러다 경기종료 소리가 들렸고, 팀원들과 끌어안고 함께 울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때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습니다."

최종 스코어 45-42. 권영준은 세상 무엇보다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도쿄올림픽 출전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메달까지 따게 돼 너무 행복합니다. 무엇보다 함께 고생한 선수들, 가족들과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권영준에게 이번 메달이 더욱 값진 이유는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올림픽호에 탑승했기 때문이다.

2013년도부터 펜싱 국가대표 자격을 유지해온 그는 2019년 컨디션 난조로 도쿄올림픽 출전티켓을 놓쳤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도 대표팀 최종명단에서 탈락한 아픔이 있었기에 이번 올림픽 출전 좌절은 선수생명에 치명타가 됐다.

"선발전 탈락 이후 선수생활을 포기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로 올림픽이 연기됐고, 다시 선발전이 열리면서 기회가 생겼습니다."

권영준은 지난해 열린 선발전에서 1위에 오르며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곁에서 저를 믿어준 아내(이혜경·28) 덕분에 다시 뛸 수 있었고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습니다. 도쿄올림픽이 선수생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된 만큼 내년에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더 좋은 성적으로 국민여러분께 보답하겠습니다."

'선수에게 너무 가혹한 무대'라고 표현한 권영준의 첫 올림픽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이제 그는 아시안게임을 넘어 '2024 파리올림픽'에 서길 희망하며 앞으로의 3년을 다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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