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말이 많아졌다. 말 할 기회가 늘어나기도 했다. 어디든 말을 하라고 부르는 곳이다 보니 해야 할 말을 준비해가기도 한다. 그래도 실수는 늘 있다. 말을 마치고 괜한 말을 했다며 혼자 후회하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안 해도 될 말을 했으니 당연하다. 당시는 그 말을 해야 옳다고 생각했다.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말하고 그것에 집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어서 말을 많이 하게 된 것도 있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면 그만인 것을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다 후회할 일을 만들기도 한다.

최근 가장 후회한 일은 강의를 할 때였다. 강의야말로 모든 것을 말로 하다보니 철저히 준비한 말 이외에는 삼가야 한다. 감정에 휩쓸려서 했다간 낭패일 때가 있다. 강의를 시작한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정해진 시간 만큼 시나리오를 만들고 사례를 찾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실례를 범할 때가 있다.

그날 강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리 준비하고 나섰다. 잔뜩 메모를 하고 머릿속에 강의 그림을 그렸지만 연단에 섰을 때 준비하지 않은 생각이 떠올랐고 거르지 않고 말을 해버렸다. 문제는 그 말에 감정이 섞여 있었다는 것이다. 상대의 반응이 내 기준에 말이 안되는 상황이란 생각이 들자 정황을 살피지 않고 쉽게 판단해 격정적인 어조로 나무랐다. 굳이 변명하자면, 상대방이 가까운 후배이기도 하고 동료이기도 해서 나를 이해해 줄 거란 생각도 들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를 나무라는 말을 하는 건 예의에 한참 어긋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거르지 않은 말을 주워담느라 강의 방향은 가끔 다른 데로 흐르기도 했고, 강의 내내 마음이 심난했다. 약간의 우쭐한 마음도 있었나 보다. 마음은 그걸 알아챘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은 담을 수 없었다. 상대는 그 말에 흥분하지 않았지만,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심지어 나는 그날 다른 사람에게도 공식적인 교육을 핑계로 평소에 담아두었던 말을 하고, 다그치고, 질문하고 구석으로 몰았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을 텐데 신중하지 못했다.

말을 잘한다는 말을 늘 듣고 살았지만, 여전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 감정을 절제하고 자신의 논리를 잘 설명하는 사람도 부럽고 어려운 현상이나 진리를 일상 언어로 명료하고 쉽게 풀어내는 사람도 부럽다. 공자님 말씀에 '군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말이 서툰 사람의 말에도 귀담아 듣는다' 하셨으니 말을 잘하는 사람 만큼이나 말을 귀담아 잘 듣는 사람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입은 하나고 귀가 둘인 인간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 하라는 탈무드 속담도 떠오른다.

말이 남에게 거슬리게 나가면 역시 거슬린 말이 자기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이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수없이 겪고도 실수가 반복되니 성찰이 더 필요하다. 말을 많이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말은 내가 가진 생각을 토대로 할진대 많은 말을 가혹하게 쏟아내는 지금의 내 사고 속 어딘가가 가혹해져 있나보다. 말을 제대로 하려면 상대의 잘못과 실수가 아니라 나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 딱 맞다.

김현진 교수
김현진 교수

사람과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서로 가지고 있는 정보나 생각, 언어 등이 서로 옮겨갔다가 옮겨 오는 행위의 반복이다. 그러니 최초의 좋은 행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된다면 좋겠다. 그래야 그 관계가 좋은 관계로 발전하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말에 관한 격언을 찾다보니 노자는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지껄이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동안 내가 한 것이 말이었는지 지껄인 것이었는지 살펴야겠다. 지껄이는 사람이 아니라 쓸모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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