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염우 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짧은 장마 후 계속된 폭염으로 인해 충청권의 식수원인 대청호에도 녹조현상이 일찍 시작됐다. 지난 8월 2일 문의수역의 남조류 세포수가 3천714셀/ml을 기록했다. 녹조현상은 댐과 같이 정체된 수역에서 오염물질의 유입과 일사량 증가로 인해 남조류가 과다하게 성장하게 돼 수질을 악화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심한 정도에 따라 관심, 경계, 대발생으로 구분해 조류경보를 발령한다. 연속으로 1천셀/ml을 넘게 되면 관심단계 경보를 발령하게 된다. 기후변화로 인해 일기가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라 얼마나 심화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대청댐이 만들어진 것은 1980년이다. 안타깝게도 대청호는 1980년대 말부터 부영양화가 시작되었고, 1990년대 들어서는 녹조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1990년에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을 지정했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녹조현상은 매우 심해졌고 2001년에는 조류 대발생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수질 개선을 위해 보다 획기적이며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했고 4대강 수계 특별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수계특별법 시행 이후에도 대청호의 수질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았고, 녹조현상은 해마다 반복되는 고질적인 이슈가 됐다.

조류 대발생이 일어났던 2001년,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들이 대전과 청주의 환경단체를 찾아와 대청호 수질 개선을 위한 협력사업을 제안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댐건설 문제로 대립과 갈등을 빚어오던 상황에서 흔쾌히 호응할리 없었다. 수자원공사는 끈질기고 집요하게 설득했고, 이에 공감한 단체들은 전향적으로 결심했다. 그 결과 2002년 4월 11일 대청호보전운동본부가 발족했다. 물환경 보전을 위한 최초의 실험적 거버넌스가 탄생한 것이다. 대전·충남북의 23개 시민환경단체와 13개의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 금강유역환경청 등 관계기관, 상·하류 마을, 전문가 그룹을 망라한 방대한 기구였다. 상류지역은 주민참여형 하천감시활동, 하류지역은 물절약 시민운동, 상·하류지역 간에는 주민교류사업 등 실천적 협력활동을 펼쳤다.

MB정부 때 4대강사업의 첨병 역할을 수행하던 개발기업이었지만, 한국수자원공사도 많이 변했다. 지금은 글로벌 물기업을 표방하며 K-water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2018년 물관리기본법 제정과 함께 물관리일원화 정책이 본격 추진됐고, 국토부 산하에 있던 K-water도 환경부 산하로 이관됐다. 마침내 환경업종(?)에 속하는 물관리 공기업으로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수자원 공급과 물환경 보전의 가능이 하나로 통합됐다. K-water는 '물로 만드는 더 행복한 대한민국'을 슬로건으로 삼고 있다. 2021년 6월에는 공기업 최초로 기후위기 경영, 물특화 ESG경영을 선언했으며 탄소중립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염우 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염우 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최근 물관리의 핵심 키워드는 참여, 협력, 거버넌스 같은 개념들이다. 대청호보전운동본부와 무주·금산·영동·옥천·보은·대전·청주·천안 등 8개 지역네트워크가 20년 동안 진척시켜 온 가치들이다. 그런데 맥락과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K-water가 대청호보전운동본부의 2021년 예산 집행을 8개월째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수많은 곡절에도 불구하고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변함없이 협력해 온 137개의 기관·단체와 지역사회에 대해 치명적인 무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열악한 근무여건을 버티며 활동해 온 실무활동가를 생각하면 이런 갑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점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물특화 ESG경영도 참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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