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석민 충북법무사회장

"어느 잡것이 이 야밤에 신문고를 울렸느냐!" 북소리에 잠이 깬 세조가 고함을 쳤다. 조선 초 태종이 설치한 신문고는 알려진 바와 달리 반역죄가 아닌 한 치기 어려웠고 공포의 의금부 안에 설치됐으니 사실 백성에게는 말뿐인 제도다. 그런데 신문고 효력을 맹신한 백성 한 명이 야밤에 누고(시간을 알리는 북)를 신문고 대신 둥둥 쳤다. 그렇게라도 억울함을 고하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는 신문고 폐지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현대판 신문고라 할만하다. 조선 신문고와 청와대 국민청원을 보면서 묻고자 한다. 일단 청원은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조선도 신문고의 근거를 경국대전에 둔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법적 근거는 '청원법'이 아니다. 법적 근거가 없단다. 단순히 국민소통 차원의 게시판이라는 게 행안부 답변이다.

'청원'이라 부르지만 근거가 없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만약 청와대 국민청원이 청원법에 근거를 둔다고 주장한다면 법 위반이다. 청원법은 감사·수사·사생활·권리관계에 관한 청원을 금지하고 있고, 20만 동의를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국민청원 거의 모든 글은 형사처벌·사법에 관한 내용이라고 하니 청원법을 어기는 것이며, 20만 동의 강요는 헌법상 권리를 법률의 근거없이 제한하는 것이다.

좋다. 현 정부가 적법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많이 보았으므로 그중 하나로 보고 실체를 보자. 청와대 국민청원은 동의자 20만이 돌파해야 답변을 한다. 그런데 국회 입법청원은 10만이면 청원심사위원회에 회부된다. 청와대보다 동의자가 더 적은 국회 청원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국회 국민동의청원'이나 청원이라 같이 부르지만 국회는 10만에 법적 구속력을 갖고 청와대는 단순 게시판이다. 황당하다. 나아가 청와대와 소통하려면 어마무시한 20만을 맞추어 오라니 민망하다. 법위에 청와대이다.

그래도 급한 건 백성이고, 신속 대응을 기대하며 영끌해 20만을 돌파하면 어찌 될까. 최근 '오창 여중생 사건'도 21만을 돌파해 답변이 나왔다. 그러나 재판의 진행은 사법부 영역이니 하나마나한 답변이고 재발방지를 위해 법과 제도를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조차 없다. 천리 길 걸어 한양에 가 의금부 담벼락을 넘어 북을 쳤더니 신문고가 아닌 누고란다. 소통 이상의 의미가 없단다. 의미 없고 형식적인 답변을 소통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청와대는 21만의 무게에 맞는 답변을 내놓았어야 했다.

김석민 충북법무사회 회장<br>
김석민 충북법무사회 회장

얼마 전 필자는 청와대의 그 단순 게시판에 청원을 했다. '오창 여중생처럼 가정 성폭행이 자살로 이어지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바꾸어 주십시오!'이다. 20만 돌파 노력은 하지 않을 것이다. 동의가 1명이든 100만이든 청와대가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소통하는 모습을 원한다. 그래서 오늘 중부매일 지면에 꽹과리(격쟁, 擊錚)를 친다. 그 소리 요란도 하다. 임금께서 잠이 깨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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