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지효 문화부장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가도 고향뿐이다/ 이따금 솔나무 숲이 있으나/ 그것은/ 내 나이같이 어리고나/ 가도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가도 고향뿐이다'

일제강점기 압제와 수탈로 헐벗고 척박해진 조국을 직시하며 아파했던 시인, 한국 시단의 3대 천재로 불리는 오장환의 시 '붉은 산' 전문이다. 황폐한 식민지 현실, 더없이 절망적이지만 고향처럼 버릴 수 없는 운명을 절감했던 시인의 마음이 드러나는 시다.

보은 회인 출신으로 광복과 함께 찾아온 이념의 혼돈 속에서도 미래를 생각하고 역사적 전망을 찾으려 했던 그는 한국 문학사에 빛나는 시인이다. 이러한 '오장환' 시인의 이름을 걸고 보은군에서 추진해 왔던 '오장환 문학상'이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군이 '오장환 문학상 운영 조례' 제정을 추진중인 가운데 작품 응모조건을 보은군내 거주자(1년 이상)와 출향인사에 한정했기 때문이다. 운영위원회 위원 또한 충청권 및 출향인사로 한정했고 심사 위원 또한 충청권 문학계 인사로 규정지었다. 이를 두고 충북작가회의를 비롯한 문인들은 "오장환 문학을 보은이라는 지엽적인 틀에 가둬 그 가치를 훼손하고 왜곡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과는 다르게 보은군에서는 13년 동안 외지인들의 주도아래 열린 오장환 문학상을 보은군민 축제로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외지 수상자들이 시낭송하고 외지인들 손에 끌려가는 1시간 맛보기 행사에 매년 약 1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기본 틀을 바꿀때가 됐다는 것이다.

오장환 시인의 전국적인 팬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격분하고 있지만 군은 물론 보은 문인들도 오히려 운영 조례 제정을 바라는 눈치다. 보은군에서는 이 조례안에 대해 이미 군의원과 문인 관계자들이 의견을 타진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군에서 예산 지원을 하는데 엉뚱한 곳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상황으로 그들의 들러리 역할만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언젠가는 바꿔야한다는 인식이 깔려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은의 한 문인은 "작품 응모 조건이 전국구에서 보은으로 줄어들었지만 지역에서 내실을 구하고 앞으로 확장해 나갈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군의 의지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군 입장에서는 군의 세금이 외지인들에게 쓰여지는 것이 불만이었던 것이고 들러리 보다는 중심에 서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넘기 위해서는 오장환 문학상의 위상을 축소시키는 개혁보다는 군민들과 지역 문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 아닐까.

이지효 문화부장.
이지효 문화부장.

오장환의 시적 변모는 과거의 전통과 풍습을 전면 부정하는데서 출발해 그 반명제로 탈향지향의 세계를 도모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귀의한다. 군에서는 이러한 오장환의 사상을 너무도(?) 잘 알아서 문학상 범위 또한 고향으로 한정하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오장환 시인은 이런 결정을 좋아하겠는가? 그것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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