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박현수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

처서가 지나고 가을장마가 이어졌습니다. 한 여름의 에너지는 지구의 빈 공간을 매워놓았고 원래 그러했듯이 생물들은 자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비 온 뒤 쑥쑥 자라는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언제 저렇게 자랐나 싶지만 우리가 잠든 사이에 바쁜 생장 활동을 합니다.

그동안 작은 잡초도 이름이 있고 지구 생태계에 필요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전해오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화단을 만들면서 내가 전달한 감성과 이론이 현실과는 격차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폭염에 주춤했던 식물들은 가을이 오기 전 온 힘을 다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애써 돈 주고 심어놓은 회양목과 영산홍을 잡아먹을 듯 자라 일일이 손으로 잡초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뽑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잡초의 이름을 불러줍니다. 한련초, 까마중, 닭의장풀, 바랭이, 강아지풀, 박주가리, 도깨비바늘, 쇠무릎, 망초... 이 작은 화단에도 수십 종의 식물들이 자릴 잡고 있습니다.

박주가리는 아주 무서운 풀입니다. 작은 잎을 낼 때는 귀여워 보이지만 온 나무를 칭칭 감고 앙증맞은 꽃을 피우는 자태를 보면 노동의 비명소리가 납니다. 땅에서 나온 원줄기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고 공을 들여 찾아서 뽑으면 줄기만 뽑히고 뿌리는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지나 다시 찾으면 활짝 잎을 내어 맞이해 줍니다. 박주가리는 여러해살이 덩굴풀로 약재로도 유명한 풀입니다. 지금 흰색 꽃을 피우며 그 향이 구리면서 달콤하기에 신비한 풀이기도 합니다. 줄기를 끊으면 흰 유액이 나오는데 이 독성물질은 자신을 먹이를 삼는 곤충들을 물리치는 역할을 합니다. 가을에 열매가 맺히면 표주박 같이 생겼는데 이 박이 터지면 흰 솜털이 가득한 씨앗이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갑니다. 그러면 또 어디서 박주가리는 다시 피어납니다.

닭의장풀은 더 합니다. 파란색의 작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온통 초록으로 화단의 그늘지고 습한 곳을 채워주는 풀이지만 넋 놓고 있다 보면 어마어마한 양으로 자라납니다. 한 줌씩 줄기를 잡아 뽑다 보면 한 곳에서 몇 포대를 차지하니 자라는 속도가 가히 식물계의 우사인 볼트 같습니다. 닭의장풀은 그 독한 닭장에도 잘 자란다고 붙여진 이름처럼 생존력이 강한 풀입니다. 줄기를 내면서 땅에 붙은 줄기는 다시 뿌리를 내리는 방식으로 넓게 퍼지며 자라는데 줄기 끝에 피는 파란색 꽃은 미키마우스를 닮아 더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귀여운 이름으로 달개비라는 별칭도 갖고 있습니다.

까마중은 흰 꽃이 핀 후 까만 동그란 열매를 맺히기 때문에 까만 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까마중은 가지과에 속하는 식물로 열매 역시 식용을 하는데 변변한 간식이 없던 시절 어린 친구들의 소중한 주전부리였습니다. 하지만 가을이 지날 때 즈음 까마중은 큰 중이 되어 있습니다. 줄기고 억새고 자리도 많이 차지해서 여간 골치가 아픈 게 아닙니다. 그리고 돌 틈이나 보도블록 틈에도 자리를 잡아 손이 더 많이 가는 풀입니다.

이름이 무시무시한 풀도 있습니다. 바로 도깨비바늘입니다. 가을이 오면 국화와 닮은 노란 꽃을 피우는데 자세히 보면 꽃 속에 꽃이 있는 국화과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꽃을 감상하기에는 씨앗에 무서움을 겪어봐야 합니다. 겨울이 오면 바늘 모양의 3~4의 가시가 달린 열매가 맺히는데 옆에라도 잠시 지나가면 온 옷에 가득 붙여버립니다. 옷 속에 가시가 박혀 잘 빠지지 않고 살에 닿을 때마다 따가워 하나하나 손을 뽑아야 합니다.

이외에도 줄기를 꺾으면 검은 액이 나와서 염색약으로 썼다는 한련초와 무릎 관절에 좋아서 우슬이라고 불리는 쇠무릎, 키가 2미터 이상 자라는 망초까지 다양한 풀들이 화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박현수 숲해설가
박현수 ㈔충북생물다양성보전협회

우리가 아름답게 여기며 키우는 원예종들은 거의 이런 잡초에서 왔습니다. 어딘가에서 잡초로 여겨 하찮고 귀찮은 존재이지만 자세히 그 생명의 특징들을 보고 있으면 놀라운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화단에 잡초를 정리해도 어차피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지금 비 오는 화단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공생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해답은 마음에 달려있지만 화단에 법적 주인이 매번 바뀌어도 그 자리를 매번 차지하는 것은 바로 잡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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