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건립 첫 한인사제 김희준 신부 부임지
신부가 등지고 신도와 미사 지낸 '벽제대' 눈길
남·녀 구분한 '2개 출입문' 시대상 그대로 반영
서양성당 구조의 '로즈창' 만들어 사용하기도

대한성공회 음성교회 외관 /김명년
대한성공회 음성교회 외관 /김명년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대한성공회 음성교회(성마틴 성당)는 충북지역 선교의 거점 역할을 했던 진천 성공회성당에 이어 두번째로 시작된 성당으로 성공회 성당의 특징인 한옥성당과 옆에 지어진 새로운 벽돌 성당이 공존하고 있다. 한옥성당은 대한성공회 음성교회 설립 100년을 맞은 2010년 새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사용했던 곳으로 현재는 성주간에만 사용하고 있다. 1923년 지어진 한옥성당은 기존 한옥부재를 활용해 건립했으며 목조한옥 구조를 성당 건축에 적용한 예로 다른 한옥형 성당보다도 초기 형식으로 외래종교의 토착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신부가 신도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등지고 미사를 지냈던 벽제대 /김명년
신부가 신도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등지고 미사를 지냈던 벽제대 /김명년

음성군청 인근에 자리한 대한성공회 음성교회는 1910년 영국 선교사 김우일(Wilfred. N. Gurney) 신부에 의해 세워지고 대한성공회 최초의 한인 사제인 김희준 신부의 첫 부임지로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소속 신도들이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교육기관인 신명학당을 설립해 민족교육 실시 등 지역의 근대사와 교육사에 있어서 의의가 높은 건물이라 할 수 있다.

한옥성당의 건축재목 봉헌 기록과 성당의 건립시기를 적은 상량 묵서(주강생일천구백이십삼년십월칠일, 1923년 10월 7일)와 관계자 명단(사제 유신덕, 차부제 최파실, 청부자 왕유년)이 남아있어 건물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건축사적, 교회사적 가치를 담고 있다.

대한성공회 음성교회 외관 /김명년
대한성공회 음성교회 외관 /김명년

한옥성당은 1923년 지어진 목조건물로 주 출입구는 맞배지붕, 제대 쪽은 팔작지붕으로 돼 있으며 평면은 서양식 바실리카식 교회건축 공간 구성을 따르고 있으나 합각부 안쪽에 배치한 제단을 중심으로 양쪽에 제의실, 성소실로 구성함으로써 기둥열의 변화를 준 점 등 특징적 요소를 가지고 있어 보존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박재원 대한성공회 음성교회 신부 /김명년
박재원 대한성공회 음성교회 신부 /김명년

대한성공회 음성교회의 박재원 신부는 한옥성당 내부 특징에 대해 설명해줬다.

"현재처럼 신부님이 신도들을 바라보는 방향이 아닌 신도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등지고 미사를 지냈던 '벽제대'가 남아있습니다. 또 서양 성당 구조에 있는 작은 창을 '로즈창'으로 부르는데 한옥성당이지만 로즈창을 만들어 사용했었습니다."

양쪽으로 난 2개의 출입구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박 신부는 "당시에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남녀가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을 금기시했던 시대로 한쪽은 남자, 한쪽은 여자가 들어가는 문이 달랐고 지금은 없지만 당시에는 양쪽을 구분하는 가림막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주교님 오신날. / 대한성공회 음성교회
주교님 오신날.  /대한성공회 음성교회
대한성공회 음성교회 전경./ 대한성공회 음성교회
대한성공회 음성교회 전경. /대한성공회 음성교회

1933년에는 유신덕(G. H. Hewlett) 신부가 어린이 교육을 위한 '신명학당'을 설립해 운영함으로써 민족교육을 실시했는데 1944년 일제강점기 교회 탄압으로 폐쇄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후 공교육이 자리잡은 1970년 음성군 최초의 유치원인 신명유치원을 개원해 운영했다.

이후 선교 100주년을 맞은 2010년 선교백주년 기념비와 새 성당과 교육관을 새로 지어 김우일, 김희준, 유신덕, 장흥점 마리안 교우(구성당 봉헌)를 함께 기념하고자 했다.

대한성공회 음성교회를 성마틴 성당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음성교회의 수호성인이 마틴 성인이기 때문이다.

로즈창 /김명년
로즈창 /김명년
신부가 신도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등지고 미사를 지냈던 벽제대 /김명년
신부가 신도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등지고 미사를 지냈던 벽제대 /김명년

박 신부는 "성공회 교회는 각 교회마다 수호성인을 정하는데 마틴 성인에 대한 그림을 새성전안에 스테인드 글라스로 표현했다"며 "거지에게 자신의 망토를 잘라 도와준 상황인데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에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를 표현한 그림도 같이 있다"고 말했다.

또 그 앞에는 한인 첫 사제인 김희준 신부의 흉상도 함께 볼 수 있다.

그 맞은편에는 교회를 창립한 김우일(Wilfred. N. Gurney) 신부가 벽제대에서 미사 드리는 장면을 스테인드 글라스로 표현해놨으며 그 앞에는 세례 받을 때 사용하는 성천이 놓여있다.

지금은 새성당에서 모든 미사가 진행되지만 종탑은 아직도 처음 지어진 한옥성당 옆의 종을 사용하고 있다.

천장에 '1923년 10월 7일'이라고 한자로 적혀 있다. /김명년
천장에 '1923년 10월 7일'이라고 한자로 적혀 있다. /김명년

구성당인 한옥성당은 최근까지 사용한 곳으로 비교적 양호하고 크게 변형되거나 이상은 없으나 새성당으로 미사를 옮기며 예배당으로서의 역할은 중단돼 쓰임이 적어지면서 자연발생적인 변형과 훼손의 단계에 놓여있는 현실이다.

충북도 문화재위원들도 "대한성공회 음성교회 구성당은 성공회성당 건축을 짓기 시작하던 초기 단계의 건축을 보여주는 예로 건립 당시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특징적인 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존할 가치가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 신부도 "건립 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음성교회의 구성당이 빨리 문화재로 등록돼 보수·유지를 통한 보존이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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