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영희 수필가

구월은 코스모스로 다가와 구절초에 머문다.

푸성귀를 태우든 불같은 땡볕도, 가슴이 턱턱 막히던 폭염도 한풀 꺾이고 이제는 코스모스 긴 목을 간지럽히는 건들마가 불어온다. 지난여름은 하도 더워서 저녁을 먹은 후 산책하러 나갔는데, 이제는 시침이 이등분하기 전 산스장으로 향한다. 산책로에 헬스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산스장으로 부르는데 산뜻한 느낌이 들어 그 이름이 마음에 든다. 작열하는 태양같이 젊은 시절에는 높은 산을 등산하고 격한 운동을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산책의 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책에 빠져 있다 보면 세월에 장사 없다고 그전과는 달리 눈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다. 안과에 다니게 되니 남편은 분서갱유까지 들먹이며 눈을 아끼라고 충고한다.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는 논어 학이편을 들먹여도, 책 만권을 읽으면 붓끝이 신들린 것처럼 글이 줄줄 써진다는 독서파만권(讀書破萬卷) 하필여유신(下筆如有神)을 읊어도 소용이 없다.

오후 네 시면 어김없이 피던 분꽃이 지난여름 하도 더우니 꿈쩍도 하지 않다가 여덟 시가 가까워야 꽃이 피었다. 서양에서 포어클락(four a clock)이라 불리는 분꽃도 환경에 적응하느라 늦은 시간에 피는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고 핀잔을 준다.

가장 강한 종족은 힘이 세거나 머리가 좋은 종족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해 살아남는 종족이라는 말까지 부언하면서. 마침 방송에서 누구에게나 건강유지에 산책이 좋다는 멘트가 나왔다. 컴퓨터 마우스도 움직여야 작동이 된다고 당장 실행을 했다.

그게 오 년 전이다. 이제는 습관처럼 하루에 한 번 산스장을 찾는다. 마스크를 쓰니 사면이 막힌 헬스장보다 탁 트인 시방세계에 바람까지 불어오는 산스장이 더 좋다. 산책하고 나면 우선 심신이 상쾌하다. 밝은 기운이 솟아 기를 받는 땅을 명당이라 하는데 명당이 따로 있는가. 산책로에는 사시사철 꽃이 핀다. 산수유, 개나리 노란 꽃으로 시작해서 가녀린 코스모스가 보호 본능을 자극하고 보랏빛 구절초는 사유와 그리움을 머물게 한다. 어느 날은 이들의 속살거림에 빠져들어 산천을 벗 삼아 노니는 달빛에 소환당하기도 한다.

이영희 수필가
이영희 수필가

거꾸리 위에서 보는 세상은 그야말로 거꾸로 서 있다. 나무도 사람도, 나이에 비례하는 고정관념까지 거꾸로 세우면서 직립인의 나약한 허리를 바로 잡아 준다.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다는 운동기구를 차례로 섭렵하고 나면 잘못된 습관과 체형이 교정된 듯 뿌듯하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이보다 더 좋은 건강과 휴식의 이중주가 또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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