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애경 수필가

코로나 19로 일상의 외부 활동들이 줄어들면서 망연히 TV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잦아졌다. 요즘은 시절 때문인지, 늘어난 TV 채널 덕분인지 오래전 방영되었던 프로들의 재방송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것도 연속보기 형태로 제작되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제격이다.

오늘은 오래전 방영되었던 인간극장 재방송이 눈에 들어왔다. 공직생활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해리성 기억 장애를 얻은 중년 여인의 이야기가 전파를 타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잃은 채 사고 전 기억들을 더듬어 가는 모습이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그려졌다.

사고 후 집으로 돌아온 날 장독대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던 그녀는 막힌 기억 앞에서 참담해질 때마다 장독을 닦고 또 닦았다. 조금씩 윤기를 찾아가는 장독을 보면서 다시 빛날 자신의 삶을 다독거리고 있는 듯 보였다.

방송을 보는 내내 먹먹함이 밀려왔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한 사람의 삶도 그러하지만, 기억 밖으로 밀려난 가족들의 안타까운 마음조차 보는 이를 아프게 했다.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릴 즈음 5부작의 마지막 장면이 그려졌다. 장독대에 비친 눈부신 햇살 아래서 그녀는 "찾아지지 않는 기억을 더듬으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다시 기억을 만들어 가겠노라"고 담담히 말했다.

순간, 코로나를 핑계 삼은 불안과 넋두리로 매일을 허송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녀가 그토록 찾고 싶어 애쓰던 하루하루의 조각들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는 나야말로 마스크 속에서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있던 건 아닌지 자문해 본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를 습격하면서 일상의 기억 한 토막이 뚝 끊어져 나간 듯하다. 한편에서는 이 시대를 '코로나 블루'라 부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일상의 변화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커피 한잔의 담소까지도 제한이 되어버린 일상을 탓하며 무기력에 빠졌다. 무기력과 함께 찾아온 건 상실이라는 이름이다. 계속되는 확산세로 셀프 자가격리 수준의 집콕을 하고 있으려니 모든 게 퇴화해 가는 느낌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소소하기만 했던 기억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기적 같은 일들이었다. 확산세가 더욱 거세지면서 다시 그런 날이 올까? 하는 막연함까지 든다. 그렇게 마스크로 인한 제약과 거리 두기는 서서히 우리의 기억을 희석시키고 내일에 대한 기약을 무력화시켜 가고 있다.

김애경 수필가
김애경 수필가

'더는 잃은 기억 때문에 울지 않겠다'던 그녀의 마지막 대사를 떠올리며 살아낸 날들의 기억들을 조심스레 꺼내 본다. 값없이 흐르는 시간은 없다. 좋았다면 추억으로 나빴다면 경험으로 차곡히 쌓아두고?, 뜻하지 않은 파고가 칠지라도 당당히 맞서보리라. 유난히 더웠던 그 여름을 기어이 이겨내고 선선한 바람으로 바짝 다가온 계절의 기적처럼, 불안한 시국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문을 외워본다.

상실된 기억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그녀와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 다시 채워나갈 우리의 기억창고에 어떤 것들이 들어찰지 짐짓 가슴이 설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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