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난영 수필가

민족 대명절 추석이 다가온다. 학교에서 돌아온 여덟 살 손자가 뜬금없이 '할머니! 저는 부자지요?' 한다. 영문을 모르나 '그럼! 우리 윤범이는 아주 부자이지.' 했더니 흡족한 듯 해맑게 웃으며, '친가와 외가 식구들을 일일이 거론하더니 작은할아버지들과 삼촌들까지 있으니' 하면서 친척이 많아 좋단다.

가족이 많아 우쭐했던 것 같다. 등을 도닥여 줬다. 작은할아버지들 가족은 명절과 한식날 이외는 만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지난해 한식 때부터 만나지 못했는데 기억하는 것이 대견했다. 술래잡기, 목말 탔던 이야기와 성묘 가서 알밤과 도토리 주운 이야기를 하며, 빨리 추석이 왔으면 좋겠단다. 해낙낙하게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손자가 미쁘다. 우애로 다져진 할아버지 형제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손자에게 좋은 추억을 심어 주었지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듯이 추석 하면 모든 것이 풍성하고, 즐거운 날로 여겨진다. 하지만, 코로나 19 확진자가 줄지 않는 가운데 다가온 추석은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가족들을 만날 수조차 없어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대가족의 만남은 명절이 아니고는 쉽지 않은데 이동을 자제하고 성묘도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라니.

추석 연휴 기간에 가족 모임 허용인원이 늘었으나 가정 내에서만 가능하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서 차례 지내며 음식을 먹고, 성묘하면 좋으련만 코로나가 가로막는다. 야외 성묘는 더 어렵다. '위드 코로나'가 되어도 온 가족이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

명절 준비로 바쁠 시기에 버엉하니 있다. 좀이 쑤셔 집 앞 전통시장엘 갔다. 단대목은 아니나 추석이 코앞이어서인지 한산하던 시장이 제법 북적거린다. 손자들은 덩달아 싱글벙글 이다. 팔이 아파 조심해야 하나 배추와 총각무를 샀다. 칼질하는데 진통이 와서 남편의 손을 빌렸다. 뭉툭 뭉툭 나무토막처럼 썰어 놓았다. 민망함은 내 몫이다. 홍고추에 청양고추, 파프리카, 양파까지 넣고 갈아 체에 밭친 물은 나박김치를 담고, 건더기는 총각김치를 매콤달콤하게 담았다. 밍밍한 명절 음식과 환상의 궁합이 될 것 같다. 얼큰하고 칼칼한 김치를 좋아하는 형제들과 조카들이 생각난다.

핵가족화에 이어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명절만이라도 대가족이 모여 정담을 나눠야 하는데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하는 추석 연휴를 보내야 한다. 이타심이 사라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질까 우려된다. 선산에서 반보기라도 해야지 싶다.

반보기는 예전에 여성들이 일가친척이나 친정집 가족들과 양쪽 집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 장만해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하루를 즐기는 일을 이르던 말이다. 원래 시집간 딸과 친정어머니의 만남이 기원으로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애틋한 풍속이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방역수칙 준수하며 선산에서 반보기로 어른들끼리 종형제끼리 끼리끼리 모여 성묘하고, 정을 나누며 우애를 다져야겠다. 돈독한 우애는 삶에 윤택한 밑거름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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