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문학] 허건식 WMC기획경영부장·체육학박사

구한말 궁내부에는 '감독(監督)'이라는 관직이 있었다. 궁내부 산하 기관인 수륜원(水輪院), 수민원(綏民院), 철도원, 서북철도국, 광학국, 내장원, 비원 등에 설치됐다. 이 직은 원내의 사무를 정리하는 업무를 하거나, 소속직원의 업무를 관리 감독을 수행하기도 하기도 했다. 이를 시작으로 현대사회를 살아 가는 우리 주변에도 '감독'이라는 직책은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분야별로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감독'이라는 용어는 탄광이나 공사장에는 '우두머리(butty)'셩격을 지니고 있고, 영화나 TV에서는 '책임자(director)'라고 하며, 스포츠분야에서는 '수석코치(head coach)'나 '매니저(manager)'로 불린다.

해외의 프로스포츠에서는 일반적으로 경기운영 등의 직접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는 코치(coach)이고 팀을 운영하는 감독을 매니저(manager)라 한다. 축구 프리미어리그에는 매니저형 감독과 수석코치형 감독이 존재한다. 여기서 수석코치형 감독은 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기는 하나, 경기실적에 따라 구단측으로부터 매니저형 감독보다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보니 수석코치형 감독의 재임기간이 평균 13개월 정도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중장기적인 팀의 전략을 담당하는 '디렉터(director)'라는 직책을 고안해, 수석코치와 디렉터 업무로 세분화시키고 전문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 20개팀중에 매니저 감독이 14명으로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프로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감독은 팀의 막강한 힘을 가지고 팀 운영 뿐만 아니라 경기운영까지 직접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스포츠계에서는 감독을 제왕적 권력을 지닌 수장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감독'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 유입됐다. 1920년에 이미 야구에 감독이 있었고, 1925년 축구 감독이라는 직책이 등장하면서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에서 사용됐다.

간혹 국제경기에서 A라는 사람이 한국팀의 코치로 알려진 터에 어느날 감독이라고 하는 B의 모습을 보며, "저사람은 뭐니?"라고 묻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한국스포츠계의 감독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석코치라 이야기해도 왜 수석코치가 모든 것을 관여하고 간섭이 많냐며 의아해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스포츠 감독들은 프리미어리그의 수석코치형감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감독은 원래 '보다(監)'와 '살피다(督)'는 자전적 해석으로 보아도 '보고 살피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한 팀을 총괄하는 역할을 할뿐더러 선수의 훈련과 진로를 좌지우지하는 절대적 존재로 군림하는 자리가 되어 있다. 마치 군부대의 지휘관과 같은 역할이 감독이고, 코치는 조교의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스포츠팀의 감독은 매니저(manger)가 되어야 하고, 경기장에서 훌륭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선수들과 경기장에서 교감하는 역할은 코치가 돼야 한다.

도쿄하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마치고 국가대표 지도자들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올라오고 있다. 매니저형 감독의 이야기들이 지난해 몇 년간 스포츠폭력에 얼룩진 감독들과 비교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군국주의 스포츠의 영향을 받아 100여년을 이어온 우리 스포츠계에 절대 권력을 쥔 감독의 모습은 이제 살아질 듯 하다. 스포츠계에 윤리교육강화되고 있고 자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계의 이러한 변화와 함께 우리 사회에도 매니저형 리더를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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