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넘치는 기운을 주체할 수 없는 세 살 손녀의 이야기다. 주말이면 놀이터나 야외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평일에는 킥보드를 타고 동네 구석구석을 서성거린다. 요즘 새롭고 신기한 대상이 많아 온갖 참견과 호기심이 날로 커진다. 오늘도 손녀가 '킥보드 타고 싶다'는 말은 밖으로 나가기 위한 구실이리라.

손녀는 사교성이 높은 아이다. 또래 아이를 둔 젊은 엄마들은 도아랑 있으면 잘 지낸다고 함께 놀기를 원한다. 놀이터나 거리를 스치는 언니나 오빠, 또래에게 친한 듯 "안녕"하며 먼저 인사도 건넨다. 심지어 놀이터에서는 '같이 놀자'고 아이들 꽁무니를 따라다닌다. 오늘은 킥보드를 타다 멈춰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이가 이상하여 다가갔단다. 초등학생 오빠가 "자기에게 인사하지 말라."고 혼쭐내고 있더란다. 손녀도 인사를 하면 안 되는 이상한 오빠를 알게 된 날이다.

색깔만 달라도 또 사고 싶은 것이 장난감이다. 또래의 아이는 비슷한 성향이리라. 도아도 알록달록한 장난감이 널린 상점을 좋아한다. 오늘은 모처럼 상점이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가는 것이다. 동안에 그곳을 스쳐 가며 눈여겨보았던 보물이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뒷전이고 혼자 상점으로 들어가 오리 한 마리를 덥석 들고는 사달라는 거다. 아마도 아이의 하는 짓이 귀여워 넘어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킥보드에 작은 오리 한 마리를 달고는 세상을 다 얻은 듯 저녁 내내 행복해하더란다.

더욱더 우스운 일은, 킥보드를 타다가 길에서 멈추고 한 행동이다. 바닥에 눌어붙어 오래된 검은 껌딱지를 가리키며 "고양이 발자국이야, 방금 지나간 것 같아."라고 말하여 웃음보가 터졌단다. 요즘 고양이에 빠져 집에서 키우고 싶다고 조른단다. 자신은 커서 '작은 고양이가 되고 싶다'라고까지 말하는 손녀. 딸은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를 깨트릴까 봐 껌딱지의 진실을 차마 말하지 못하였단다. 어디 그뿐이랴. 이 할미도 이즈음에서 고백하련다.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외할머니네 풀장에서 신나게 놀았던 추억을 그린다. 손녀는 할미를 볼 때마다 그날의 아쉬운 기억을 떠올리며 묻고 또 묻는다. '할머니, 도아 풀장은? 독수리와 부엉이가 물어가지 않은 거지?' 손녀의 물음에 나는 '풀장 잘 있어. 할아버지가 독수리를 이기니 걱정 마라'고 답한다. 스산한 밤, 물속에 들어가려고 하여 '밤에는 독수리가 내려온다.'고 겁을 준 대화이다. 순수한 마음에는 하얀 거짓말도 동화 같은 이야기로 간직하고 있다.

오늘도 딸에게 들은 이야기에 미소를 짓고 있다. 아이 덕분에 순수의 세계에 푹 빠진 시간이다. 그 이야기를 흘릴 수 없어 이렇게 기록한다. 부디 껌을 씹는 그대여, 씹던 껌은 휴지통에 버리기를. 사랑스러운 손녀가 껌딱지를 고양이 발자국이라고 오해하지 않도록 부끄러운 흔적을 남기지 말길 원한다. 코앞으로 다가온 추석에 보게 될 도아의 깜찍한 사유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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