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9월이 되면서 하늘이 더 파랗고 구름도 더 하얗다. 방금 누군가 뽀드득, 닦아 놓은 듯 맑다. 그래서 요즘은 휴대폰으로 하늘을 자주 찍는다. 사진을 보면 꼭 유명한 사진작가가 찍은 듯 멋스럽다. 액자에 끼워 집 한쪽에 장식을 하고 싶을 정도다.

저녁에 잡지책을 보다가 오후에 보았던 하늘이랑 닮은 풍경 사진이 있었다. 가위로 오려 작은 빈 액자에 끼웠다. 액자에 끼워 놓으니 훨씬 돋보인다.

액자를 어디다 놓을까 생각하다 책장에 세워 놓았다. 갑자기 분위기가 확 달라져 보인다. 예전에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두 장 그려 작은 액자에 끼워 선물을 하곤 했다. 작고 예쁜 액자 덕에 부족한 내 그림이 나름 괜찮아 보이는 듯했다. 그래서 꽤 오래 선물을 했다.

우리 집에는 액자가 많다. 아이들 어렸을 적에는 액자 천국이었을 정도다. 사진 액자부터 그림 액자까지 집안 곳곳에 걸려 있었다. 며칠 지나면 액자에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 닦는 것도 일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액자 속에 자신의 모습이나 자신이 그린 그림을 좋아했다. 어떤 날은 새 사진과 그림을 가지고와 액자에 넣어달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액자도 많아졌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집을 떠나고 액자 정리를 했다. 버리는 것이 아닌 큰 상자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또는 문득, 액자를 바꾸어 놓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는 큰 액자들이 등장했다. 예전에 그림을 그리다 멈춘 아내가 다시 그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아내가 그려오는 그림이 참 좋아 액자에 끼워 걸어 두기도 하고 바닥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기도 했다.

어느 순간 아내의 그림이 점점 늘어나고 액자도 늘어날 때쯤 집안이 너무 꽉 찬 느낌을 받았다.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우리는 다시 그림 액자를 한 곳에 모아 두고 아주 가끔 그림 액자 한두 개를 계절에 따라 바꾸어 놓곤 했다.

그림 액자나 사진 액자를 한참 보면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아주 오래 전 우리 집에는 보물처럼 아끼는 액자가 안방 벽 위 천장에 붙을 정도로 달아 놓았다.

두 개는 사진이 들어간 것이고 한 개는 호수와 멋진 집이 있는 평화스러운 풍경 사진이다. 특별한 날에 찍은 잘 나온 사진이 다닥다닥 모자이크 하듯 붙어 있었다. 결혼사진, 백일사진, 졸업사진이 대부분이었다.

어머니는 아주 가끔 의자를 놓고 올라가 꽁꽁 짠 걸레로 액자를 닦았다. 초등학교 때 첫 상장을 받아 온 날 아버지는 액자에 상장을 끼워 사진 액자 옆에 달아 놓았다.

지금이야 액자가 흔하지만 예전에는 뭐든 귀했다. 액자 역시도 그랬다. 초등학교 복도에는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액자에 넣어 걸어 두었다. 그림을 좋아하던 나는 우리 학교 복도를 천천히 걸어 다녔다. 그렇게 많은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고등학교 때 마침 친구 한 명이 유리 자르는 칼을 집에서 가져와 크고 작은 액자를 만들어 주었다. 금이 가서 누군가 버린 유리를 주워야 유리칼로 잘랐다. 그러고는 액자를 만들어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 사진도 넣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런데 살다보니 나도 누군가의 액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내가 액자가 되어 그 사람이 더 빛난다면 참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초가을, 두툼한 나무 액자 거울을 바라보며 이 가을 풍성한 삶의 액자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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