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조부모를 비롯해 3대가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가 아주 부정기적이고 흔치 않은 일이 된 지 오래다. 갈수록 대면 접촉이 줄어들고 있다. 사회조직의 분화에 따라 공간을 초월하는 삶이 불가피한 데다 사회 역시 미디어의 발전에 따라 사이버 네트워크의 삶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Zoom 등 첨단 미디어로 접촉 기회 부족에 따른 아쉬움을 미흡하나마 대신할 수 있다는 구실 역시 가족 모임의 빈도축소에 한몫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 간의 비대면 접촉과 소통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갈수록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 동인은 지난 몇 년 전부터 주목받고 있는 '메타버스(metaverse)'다. 'meta'(현실을 넘어서는)와 'verse'(universe에서 uni생략:모두가 하나로 바뀌어 함께 하는 세계)의 합성어로 컴퓨터 과학을 이용해 만든 가상공간이다. 이 가상공간에서 현실 세계처럼 사회, 경제, 문화 등의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이 그 주목의 요인이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주로 영화나 영상 분야 등 특수상황에서 사용)이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인터넷을 통한 지도나 위치 검색 등 일반적 상황에서 사용)보다 더 진화한 개념이다.

'아바타(Avatar:판도라 행성의 원주민인 나비 족과 인간 유전인자를 결합해 만들어졌으며 인간의식으로 원격 조종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체)'라는 영화를 생각하면 메타버스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메타버스에는 인간이 직접 들어갈 수 없다. 자신의 분신으로 만든 아바타가 메타버스에서 대신 활동한다. 마치 자신이 현실 세계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족 구성원 각자 만든 아바타가 메타버스에서 현실 세계에서처럼 가족 간의 화합 등을 도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상이 변했으니 소통 방법도 변하는 것은 맞다. 의견이나 의사 등을 직접 만나 주고받든 미디어를 통해 주고받든 소통 자체로만 따지면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소통의 질이 문제다. 가족의 소통은 정보 전달 이전에 직접 눈빛과 소리, 몸짓 등 오감의 마주침을 통한 정감(情感) 교류가 우선이다. 미디어를 통한 정감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마주침의 정감을 보전(補塡)할 수 없다. '기계음과 영상을 통해 느끼는 정감'이 '만나 마음에서 느끼는 정감'을 절대 대신할 수 없다는 얘기다.

추석 때 늘 되뇌는 속담이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加也勿減也勿 但願長似嘉俳日:가야물감야물 단원장사가배일).' 그 근원을 알 수 없다. 단지 조선 1819년 김매순(金邁淳)이 쓴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현재 서울인 洌陽의 세시풍속을 수록한 책)에 기록되어 있다. 한자인 데다 중국에도 추석과 같은 중추절이 있어 중국에서 유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토종 속담이다.

추석에는 모든 가정에서 햇곡식, 오곡백과로 차례상을 차려 풍년을 마련해준 농토와 하늘신에 동이 트기 전 차례를 올린다. 신분과 관계없이 가정은 차례상을 푸짐하게 차린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말이다. 농토와 하늘 신이 흠향(歆饗)한 뒤 그 음식을 가족 성원은 물론 이웃과 나눠 먹는다. 조상숭배도 잊지 않는다. 성묘로 이어진다.

추석 하루는 머슴이나 노예도 일하지 않은 채 먹고 마시며 즐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간 풀지 못한 가족이나 이웃 간의 응어리도 풀고 서로 정감을 교류한다. 가족 성원은 화합과 사랑을 도모하고, 이웃은 공동체 의식을 다진다. 이는 스마트폰, 메타버스 등 어떤 첨단 미디어에서도 담보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가치다. 추석이 신라 이후 지금까지 이어온 이유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오호 애재(嗚呼 哀哉)로다!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추석 속담이 바뀌는 운명에 처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올 한가위만 같지 말아라(加也勿減也勿 但願長異此嘉俳日).'로 말이다. 많은 사람이 지난 2018년 이전처럼 귀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9년 말 지구를 무자비하게 침공한 코로나19가 귀성을 방해한 주범이다. 입자 크기가 고작 80~100nm(1nm:1/천만 cm)인 바이러스지만, 그 위력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을 정도로 가공할만하다. 다수의 사망자와 위중 환자는 물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장기화에 따라 인간관계가 몰정(沒情)적이고 사무적 형태를 띤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벌써 민족의 명절이 4번째 비애를 맞았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메타버스 등 어떤 첨단 기술을 활용한 가족 만남이라도 옛 명절의 정서를 대신할 수 없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