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 잔]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연초제조창은 학창 시절 안덕벌에서 자취를 하던 친구가 있어, 자주 오가던 곳이었다. 연초제조창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그곳에 있던 레코드 가게에서는 그때그때 유행하던 노래가 나오고, 겨울이면 캐럴이 흐르기도 해서 한층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이 난다.

연초제조창은 60년 가까이 담배공장으로 존재하면서 한때 천여 명이 근무를 했던 공간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 기능이 사라졌지만,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안덕벌과 담배공장에 얽힌 추억과 이야기를 청주시한국공예관(관장 박상언)과 충북챔버오케스트라(단장 이상조)가 협력해 음악극 형태의 오페라로 제작했고, 지난 9월 25~26일 이틀간 세 차례 공연이 이뤄졌다. 연초제조창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연초제조창과 공장 주변 안덕벌에서 일어났을법한 이야기들로 엮었는데, 월급날의 풍경, 사내 장기자랑 같은 소재를 통해서 재미있게 극화했다.

월급날 외상값을 받으러 온 상인을 피해 다니는 직원이 등장하기도 하고, 짝사랑하는 여공에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순진한 총각이 나오기도 한다. 때때로 큰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가슴 뭉클해지는 장면도 나오는데, 끝날때까지 관객석에서는 여러 차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청주시 전체의 역사가 아닌, 우리 지역에 있던 담배공장과, 그 담배공장이 소재했던 안덕벌이라는 골목의 이야기가 사람들을 웃게도, 때로는 눈물짓게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수십년전 담배공장 이야기 속에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사를 영어로 History라고 한다. History = He + Story이니 '남자 이야기'라고 해석되지만, 예전엔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역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강'을 건너고 있다. 강을 건너며 만났던 아침과 저녁, 밤 별들의 반짝임, 물결의 일렁임, 새벽 물안개 같은 것들은, 다 건너가고 나면 다시는 볼 수가 없다. 강은 거기에 그대로 있을 것이지만, 우리가 보고 경험한 모든 것들은 이미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

청주연초제조창이 문을 닫은지도 벌써 17년이 지났다. 60여 년 동안 이곳을 거쳐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문을 닫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그때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때의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한 창작오페라 '안덕벌 랩소디: 추억을 피우는 공장'이 공연을 통해 청주 시민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이러한 지역의 이야기가 문화 콘텐츠로 제작되는 환경이 자리 잡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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