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예전에 자주 경험했던 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다. 점심식사 메뉴를 정하는데 서로 결정권을 떠넘겼던 일 말이다. 어떤 사람이 무엇을 먹을 것인지 묻는다. 십중팔구는 "아무거나" 혹은 "네가 결정해"라고 말한다. 남의 결정을 이의 없이 따르겠다는 표현으로 권리 포기다.

왜 사람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결정권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일까? 그 원인은 업무 방해도 아니고 식사 메뉴 부지(不知)도, 타인 배려도 아니다. 결정장애가 있어서도 아니다. '한 끼 먹는 것 어떤 것이면 어때?' 하는 안일한 생각 때문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선뜻 자신의 선택을 표출하지 않는다. 왜 그러할까?

뇌가 사고를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면서 마주쳐야 하는 사안의 결정은 대부분 경험, 기억은 물론 직관 등 무의식에서 비롯된다. 물론 의지에도 근거한다. 단 의지에 의한 결정은 다양한 변수 고려가 필요하다. 메뉴 결정의 경우 한식, 중식, 양식 등은 물론 구체적인 변수가 무한할 정도다. 그 선택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뇌가 깊게 또는 오랫동안 생각하는 것에 귀찮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뇌는 생각을, 특히 곰곰이 하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육체가 무더운 날 현장 노동이 싫은 것처럼, 정신인 뇌도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고를 싫어한다는 얘기다. 힘든 노동에 몸을 사리듯이 골치 아픈 일에 뇌를 사리는 이치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 한다. 인간은 '생각을 잘 하지 않으려는 존재'로 최대한 간단하고 두뇌 에너지를 적게 쓰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다. 스크루지가 돈 쓰는 것에 인색하듯이 뇌도 사고에 인색하다는 뜻이다. 돈 아끼듯 생각도 아낀다. 마주치는 사안을 정보 수집과 탐색을 통해 합리, 논리,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뇌는 과도한 에너지 소모로 방전할 위기에 처한다. 이런 위기탈출을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생각을 피하거나 최대의 가성비를 높인다. 속된 말로 뇌가 잔머리를 굴리는 이기적 존재라고나 할까?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인지적 구두쇠의 다른 특징은 속단(jumping to conclusions)이다. 많은 변수를 무시한 채 신중하지 않고(심적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서둘러 가볍게 판단을 내린다는 얘기다. 인지적 구두쇠는 이성보다 비이성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식사 메뉴를 직접 정하지 못하고 그 결정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은 자신의 뇌가 인지적 구두쇠임을 인정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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